스티커 제거 인증·욕설 댓글… '장애인 시위' 겨냥 온라인 혐오 확산

입력
2022.02.16 18:00
전장연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 표적
온라인 커뮤니티에 혐오 표현 난무
"코로나 유행 맞물려 공격 대상 확대 조짐"

출근시간대 지하철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겨냥한 혐오 표현이 온라인에서 확산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달 3일부터 전장연이 지하철에서 시위를 시작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엔 전장연이 지하철 역사에 배포하거나 붙인 스티커 및 전단지를 뗐다는 인증글이 다수 게시되고 있다. 댓글란에는 자칭 '전단지 제거반'인 이들의 행태를 '진정한 선한 행동력'이라고 두둔하거나,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는 떡밥이고 돈이 목적'이라며 전장연 요구사항을 폄훼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이날 전장연의 혜화역 시위 현장 페이스북 라이브에도 시위 시작 직후부터 '그만해 XX' '애먼 사람 괴롭히지 말고 꺼져' '돈만 밝히는 놈' 등 각종 댓글 공격이 이어졌다. 전날부터 전장연 홈페이지는 사이버 공격으로 다운됐다가 정상화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하철 선전전을 하던 장애인 활동가가 행인에게 위협을 당한 일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장연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고 관련 예산을 늘려달라며 ‘출근길 지하철 타기’ 시위를 진행 중이다. △지하철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장애인 차량 이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이동지원센터 운영 지원 △전용 콜택시 등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운영 지원 △평생교육시설 운영비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전장연은 출근길 시민에게 불편을 끼쳐 송구하지만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박철균 조직국장은 "국회나 기획재정부에 가서 말하라고 말씀하시지만 이미 1년간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여왔고 기재부 면담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20년째 이어지는 투쟁에도 끊임없이 밀려나기만 하는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말했다. 전장연 관계자는 "지난해 말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예산 책정 관련 조항이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로 돼 있어 자칫 예산 반영이 안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온라인상 혐오 조장의 표적이 사회적 약자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코로나19 유행 국면과 맞물려 이들을 겨냥한 부정적 언사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에 혐오와 차별 표현이 늘었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9.5%에 달했다. 최근 운동선수, 인터넷방송 진행자를 희생시킨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온라인 괴롭힘) 또한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혐오 표현은 공격 대상이 된 집단에 대한 차별 행위나 증오범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분노의 대상을 찾는 경향이 커지는 만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혐오를 막을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주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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