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5일 '경부선 대첩'이 벌어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종일 경부선 KTX를 타고 지역 유세를 다녔다.
상행선을 탄 이 후보와 하행선을 탄 윤 후보의 동선이 엇갈리면서 대면 충돌은 없었지만, '말의 격돌'엔 불꽃이 튀었다.
이 후보와 윤 후보는 서로를 쉼없이 저격했다. 이 후보는 ‘무능과 분열’ 이미지를 윤 후보에 덧씌웠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유능과 통합’ 브랜드를 강조했다. 윤 후보는 이 후보를 ‘자꾸 말을 바꾸는 사람’이라 몰아붙였다. ‘심판 대상’인 민주당과 이 후보가 한몸이라며 정권 심판 여론을 한껏 자극했다.
이 후보는 이 같은 발언으로 "나는 미래, 윤 후보는 과거"라는 프레임을 띄웠다. 동시에 "지도자의 무능, 무지, 무책임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죄악"이라며 윤 후보의 무능력 프레임에도 힘을 주었다. 이 후보 스스로는 "국민 통합, 경제 재도약, 위기 극복을 이룰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인물론을 부각시켜 '정권재창출 대 정권교체' 구도가 아니라, '후보 대 후보'의 구도를 만들겠다는 게 이 후보의 셈법이다.
유세 때마다 이 후보는 감염병, 미중 갈등 같은 대형 위기에 '유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는 자신뿐이라면서 정치·행정 경험이 없는 윤 후보에게 견제구를 던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피해를 입은 대구에선 "신천지가 코로나를 퍼뜨리고 방역에 협조하지 않을 때, 검찰이 신속히 압수수색을 해서 교인 명단을 구했다면 한 명이라도 희생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신천지 대구교회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반려한 점을 꼬집은 것이다.
반면 경기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때 자신의 감염병 대처는 "대한민국 표준이 됐다"며 홍보했다. 이 후보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신천지를 '급습'해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의 검체를 채취한 것을 대표적 성과로 꼽았다.
윤 후보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추가배치론에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표 계산'만 한 사드 추가배치론이 실제론 전쟁 위협만 높이는 "안보 포퓰리즘"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는 대전 유세에서 "사드를 충청에 배치한다고 충청도민을 고통받게 하면 안 된다. 사드 배치 지역은 유사시 첫 타격 목표가 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을 세계 5대 강국으로 만드는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한 이 후보는 경기지사 시절 쌓은 경제 '실적' 역시 윤 후보와의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이 후보는 규제 문제로 부산에서 유치가 좌초됐던 인공서핑장을 자신이 경기 시흥시에 2년 만에 완성한 전례를 세세히 설명했다.
이 후보는 이날 동선을 통해서도 '경제'와 '통합'을 강조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0시에는 부산항 해상교통관제센터를 찾아 수출 선박 근무자들과 통화했다. 이후 '부산 부전역→대구 동성로→대전 으능정이거리→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순으로 이동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야권 지지세가 강한 영남과 '캐스팅보트' 지역인 충청을 아우르며 '통합'을 강조한 것이다.
이 후보는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유세 점퍼 대신 검은 정장 코트 차림으로 현장을 누볐다. '민주당보다 이재명'이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시도로 읽혔다.
윤 후보는 이 같은 말로 이 후보의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 말 바꾸기 논란을 불러냈다. 이 후보에게 '부도덕하고 믿을 수 없는 후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진정성'을 본인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민주당 정권에 "부패" "무능" "내로남불"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가 하면, 이 후보까지 싸잡아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불렀다. 이 후보를 심판 대상에 올려 놓은 것이다. 스스로는 "정치 신인이라 누구한테도 빚진 게 없다"고 자신했다.
이 후보를 비판하는 윤 후보의 입은 평소보다 거칠어졌다. 부산 서면 거리유세에서 '대장동 게이트'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김만배 일당이 현재까지 가져간 것만 8,500억 원"이라며 "이게 행정의 달인이냐"라고 따졌다. 이 후보를 거명하진 않았지만, '행정의 달인'이라 자칭하는 이 후보를 직격한 것이다. "불법과 반칙과 특권의 달인"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 후보 '말 바꾸기' 논란은 유세 때마다 공격했다. "매일매일 말이 바뀌고, '이 소리'를 하다 표가 떨어질 것 같으면 저기 가서 '저 소리'를 한다"며 "한 번 속을 수는 있으나 두 번, 세 번 속는다면 우리가 바보인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 실용주의를 말 바꾸기로 깎아내린 것이다. 윤 후보는 자신의 진정성을 부각했다. 대전 거리유세에서 시민들에게 "누가 가장 정직해 보이느냐" "누가 가장 진정성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윤석열"이라는 호응을 이끌어냈다. 주호영 의원은 동대구역 광장 유세에서 "장소마다 말이 달라지는 사람, 국고를 축내는 사람을 예전에는 '쥐새끼'라고 했다"고 가세했다.
이 후보가 힘을 주는 '유능한 이재명 대 무능한 윤석열' 구도도 깨뜨리려 했다. 윤 후보는 민주당 정권이 "시장 원리와 현장의 목소리, 과학을 무시했다"면서 그 근거로 28번을 발표하고도 집값을 잡지 못한 부동산 정책과 실효성 없는 탈원전 정책을 꼽았다. 윤 후보 자신은 "권한은 전문가와 실력 있는 사람에게 과감하게 위임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제가 지겠다"고 했다.
윤 후보는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중구 청계광장으로 이동해 유세 출정식을 열었다. 그는 입을 열자마자 이 후보와 현 정권을 맹폭했다. "정상 국가로의 회복"을 자신의 소임으로 내세웠다.
이어 대전, 대구, 부산을 차례로 방문했다. '충청의 아들'임을 내세워 충청 대망론을 띄우고, '집토끼'를 우선 공략한 것이다. 윤 후보는 정장 대신 종일 국민의힘 점퍼 차림으로 다니는 것으로 '야성'과 '보수 정체성'을 강조했다. 하의는 정장 바지에 구두를 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