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방역 귀찮다고 농약 푸나... 늘어나는 '철새 독살사건'

입력
2022.02.16 04:30
16면

편집자주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7일 충남 아산시 인주면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야생오리류 100마리가 농약이 묻은 볍씨를 먹고 집단 폐사한 겁니다. 누군가 고의로 볍씨에 농약을 대거 묻혀 놓은 것으로 추정돼 현재 경찰이 수사 중입니다.

놀랍지만, 새로운 사건은 아닙니다. 겨울철마다 반복되는 사건입니다. 2019~2020년 겨울철 넉 달간 19건의 집단폐사 사건이 일어나 모두 176마리가 죽었습니다. 그 전인 2018년 겨울에는 충남 당진 한 곳에서만 가창오리 245마리가 떼죽음을 당했죠. 이번 겨울에도 농약중독 의심 사례만 12건에 달합니다.

겨울마다 철새 잔혹사가 반복되고 있는 겁니다. 매년 보다 많은 철새 무리가 우리나라를 찾길 바라며 생태 경관을 가꾸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 걸까요.


겨울만 되면 농약에 희생되는 겨울철새들

사람들이 농약을 풀어 철새를 잡는 가장 큰 이유는 조류독감(AI) 때문입니다. AI는 닭, 칠면조, 오리, 철새 등 여러 종류의 조류가 앓는 바이러스성 감염병으로, 주로 겨울에 유행합니다. 고병원성 바이러스의 경우 전염될 경우 가금류를 폐사시키는 일이 일어납니다. AI의 국내 유입 통로가 철새라는 겁니다.

좁은 우리에서 수만~수십만 마리의 가금류를 키우는 국내 농장 특성상, AI가 한 번 유행하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염성도 강해 인근 농가에서 발생하면 반경 500m 내 가금류를 모두 살처분해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AI가 번지면 순식간에 수천만 마리가 죽는 일까지 생깁니다. 농장주들이 철새를 잔뜩 경계하는 이유입니다.

농가에 치명타 AI ... 새의 잘못인가, 사람의 잘못인가

하지만 AI 유행은 결국 사람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철새가 AI 바이러스를 국내에 들여오긴 하지만, 그걸 농가로 끌어 들여오는 건 사료차 바퀴나 농장 관계자 신발 등을 통해서라는 겁니다. 바깥을 돌아다니다 바퀴나 신발에 철새 똥을 묻혀 왔으면, 농장에 오기 전에 씻어내야 하는데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또 철새에게 AI 바이러스가 있다 해도 여러 지역을 거쳐 날아오다 보면 병원성이 약해져 치명적이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항체가 생겨 바이러스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죠. 실제 올해 AI 바이러스의 경우, 유럽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는 병원성이 매우 강했지만 우리나라로 오면서 다섯 차례 변이를 일으켜 현재는 저병원성으로 바뀌었습니다. 올해 AI 피해가 크지 않은 이유죠.


철새는 AI만 몰고 오지 않는다

AI 때문에 철새를 구박하기엔 철새가 가져다 주는 이점도 엄청납니다. 우리나라는 한대와 열대의 중간지점으로, 겨울 철새의 피난처 역할을 합니다. 북쪽 시베리아에 살던 철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통상 11월부터 내려와 2월 중하순까지 우리나라에 머물다 돌아갑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날아듭니다.

이들의 똥은 천연 거름이 되고, 새끼를 낳아 기르면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해충을 잡아먹습니다. 철새들이 벌레를 열심히 잡아먹는 바람에 농업에도 상당한 도움을 준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철새 도래지는 지역 관광자원 역할도 합니다. 철새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되죠.

철새 사라진다면 ... 마오쩌둥의 교훈 잊었나

이런 역할을 하는 철새가 사라지면, 무엇보다 생태계 균형이 망가집니다. 중국의 마오쩌둥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마오는 1955년 "참새가 인민을 먹일 소중한 쌀을 약탈한다"고 선언합니다. 곧이어 참새 씨를 말릴 정도의 토벌작전이 진행됩니다. 1년간 약 2억 마리 참새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제 풍년 들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 떼가 나타났고, 참새를 잡겠다고 뿌려놓은 덫에 늑대, 개, 토끼 등이 걸려 들면서 생태계가 붕괴됐고 대흉작이 들었습니다. 중국은 이후 3년간 4,000만 명이 굶어 죽는 대기근을 겪었습니다.


처벌법 있어도 실제 처벌은 '0건'

그럼에도 사람들은 당장 AI 방역 문제 때문에 농약을 묻힌 볍씨 같은 것들을 뿌립니다. 야생생물보호관리법은 그럴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형을 규정해 뒀습니다. 멸종위기종일 경우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형이 조금 더 강해집니다.

하지만 실제 적발돼 처벌되는 사례는 드물다 못해 아예 '0건'입니다. 누가 볍씨를 뿌렸는지 알기도 어렵고, 농약에 중독된 철새는 대개 밤에 볍씨를 먹고 낮에 다른 곳에서 죽기 때문에 어디서 먹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철새 서식지 인근에다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자는 주장까지 나왔지만, 야외의 드넓은 곳에다 일일이 다 설치하고 감시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흐지부지됐습니다. 대신 정부는 겨울철만 되면 철새 서식지 부근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맞춰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를 AI가 무섭다고 그렇게 막아야만 할까요. 그보다는 우리 스스로 농가 방역을 더 철저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김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