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왕의 사무친 말을 권한다

입력
2022.02.2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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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순재


편집자주

20대 대선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소박하지만 당찬 바람들을 연쇄 기고에 담아 소개합니다.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을 지키자.' 20대 대선을 앞두고 요즘 옛 고등학교 교실에 걸려 있던 교훈이 종종 떠오른다. 학생 땐 '항상 씻고 다니는데 뭘 더 깨끗하고, 부모님 있는데 뭘 또 책임지라는 거야?'라며 시큰둥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그 뻔해 보였던 교훈이 달리 보인다. 사회에 나와서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게 결국 자기 수양이더라.

팬데믹과 남녀·세대 갈등으로 인한 분열로 위태로운 시대다. 우리 앞에 놓인 이 난제들을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 그 어느 때보다 전문적이고 그래서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 관념적인 빈말을 걸러내고 이번 대선에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시대가 어려우면 희망과 통합이 필요하다. 우리가 숱한 역경을 딛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조금만 더 참고 버티면 밝은 미래가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이 고통을 인내하려면, 팬데믹으로 줄줄이 문을 닫은 자영업자들이 삶을 놓지 않으려면 희망이 필요하다. 그 희망을 정책으로 열어 줄 전문성 갖춘 인재를 두루 등용해야 한다. 인재에 여야의 구분은 필요 없다. 포용력으로 인재를 발굴하고, 모두를 보듬어야 한다. 모두의 대통령이지, 특정 정파의 대통령이 아니지 않은가.

TV 사극을 통해 영조와 진흥왕을, 영화에선 대통령을 연기했다. 여러 왕과 대통령을 연기하며 두 지도자를 눈여겨봤다. 정치 이념은 나와 다르지만,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호찌민이다. 고르바초프는 1989년 말부터 1990년 사이 냉전에 종지부를 찍었다. 구소련 시절, 권력을 내려놓고 동유럽 개혁주의자들에게 자유와 희망을 줬다. 얼마나 위대한 발상인가. 호찌민은 평소 양복을 안 입었다고 한다. 늘 소박한 차림으로 민중 사이로 뛰어들어 국민을 결속했다. 대통령이라면 언제든 자신 있게 국민들에게 뛰어들고 끌어안아야 한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연극 '리어왕' 공연을 했다. 리어가 권력의 바닥에 떨어졌을 때 사무치게 말한 그 대사를 대선후보들과 유권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모진 비바람 맞고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아. 집 한 칸 없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어떻게 이 험난한 비바람을 견디겠느냐. 내 그대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다. 부자들아, 가난한 자들의 삶을 몸소 겪어 봐라. 넘쳐나는 것들을 그들과 나누고, 하늘의 정의를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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