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만 울리는 상장폐지 막장드라마

입력
2022.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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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결산 법인 감사보고서 제출 시즌의 도래와 함께 ‘상장폐지의 계절’이 돌아왔다. 신라젠에 이어 오스템임플란트, 세원정공 등 임직원의 횡령·배임으로 이미 상장폐지 기로에 놓인 회사들도 상당수다. 상장된 주식이 퇴출되어 더 이상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는 상장폐지는 해당 회사의 주식에 투자한 소액주주들에게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기준 과거 5년간 상장 폐지된 회사가 코스피와 코스닥을 통틀어 134개라고 하는데 이 중 결산 관련 상장 폐지가 43개라고 한다. 상장폐지가 주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주주인지 아니면 소액주주인지에 따라 크게 다르다. 장폐지가 된다고 해서 주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주주는 직접적 피해가 없다. 하지만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소액주주들의 경우는 다르다. 소액주주들에게 특히 중요한 것은 주식의 환금성인데 거래소에서 거래되지 않는 비상장주식은 환금성이 없어지므로 회사의 재무상태나 수익성에 문제가 없더라도 사실상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다.

상장폐지가 되는 사유는 다양하다.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에 한정의견이 달리거나 의견거절을 받는 경우, 임원의 횡령이나 배임과 같이 회계투명성에 의문이 발생하는 경우 상장폐지로 갈 수 있으며 자본금 50% 이상이 잠식되는 등 재무상태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상장폐지가 될 수 있다. 경영진이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는 등 상장사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상장폐지가 될 수 있다. 즉, 회사가 부실해져서 상장폐지가 초래되는 경우도 있지만 멀쩡한 회사임에도 경영진이 회계감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거나,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고 이를 복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경우에도 상장폐지는 초래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상장폐지를 유도해서 정리매매기간 중 헐값에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매입하고자 하는 ‘고의' 상장폐지도 종종 발생한다.

회사의 대주주나 경영진이 불법을 저지르거나 임무를 게을리하여 상장폐지를 초래한 경우 피해를 당하는 소액주주들은 이를 야기한 대주주나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 경영진이 거액의 횡령을 하기 전까지 특별히 재무구조상 문제가 없는 기업이었는데 경영진이 거액을 횡령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회계감사절차에 협조하지 않아 상장폐지가 된 사안에서 2012년 대법원은 소액주주들이 입은 손해가 ‘간접손해’에 불과하므로 배상받을 수 없다며 경영진의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였고(대법원 2010다77743판결), 이후로 경영진의 불법이나 태만으로 인해 멀쩡했던 회사가 상장폐지된 경우라도 대주주는 배상책임을 면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법원의 논리는 횡령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회사’이고 ‘상장폐지’로 주주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회사만 손해배상청구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한책임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이사의 제3자에 대한 책임을 규정한 상법규정을 사문화하고 기업가치와 무관하게 환금성 상실로 손해를 입는 피해자들의 현실을 무시한 판례라는 학계와 실무계의 비판이 무성하다.

소액주주들만 울리고 대주주는 뒤에서 미소 짓게 하는 상장폐지관련 제도와 판례가 개선되지 않는 한 올 2, 3월도 많은 소액주주들에게는 잔인한 시련의 계절이 될 것이다.



김주영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