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30대 중반에 접어든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에게 올림픽은 불운의 무대로 여겨져 왔다. 2010 밴쿠버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시상대에서 ‘시건방 춤’을 춰 스타가 됐지만, 전성기를 맞았던 2013년 발목 골절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며 2014 소치 대회 출전이 불발됐다. 2018 평창 대회에선 남자 계주 5,000m 준결승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으나, 결승에서 동료가 넘어지며 목표했던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2022 베이징 대회에서 자신의 종목 일정이 채 끝나기 전부터 ‘진정한 승자’로 불린다. 녹슬지 않은 기량을 뽐낸 가운데, 그가 3년 전부터 운영한 유튜브채널 ‘꽉잡아윤기’ 콘텐츠가 웬만한 중계영상보다 더 큰 인기를 끌면서다. 대회 개막 전 10만 명대던 구독자 수는 쇼트트랙 판정 이슈가 불거진 대회 초반부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14일 오후엔 70만 명을 넘어섰다. ‘골드버튼’이 주어지는 100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콘텐츠를 위한 탐구 열정과 조회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양질의 콘텐츠를 내놓은 꾸준함, 그리고 현역 선수의 유튜브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뚫어낸 뚝심이 채널 흥행 배경으로 꼽힌다. “올림픽 시즌 4년마다 소통하는 기회가 너무 제한적이라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관중 입장이 제한된 이번 대회 현장에서 ‘곽윤기 뒷선수 시점’ 같은 얼음판 위에서의 기발한 영상은 물론, 외국 선수들의 ‘오징어 게임’ 따라잡기, 막내 선수들에게 세배 받는 ‘삼촌’ 곽윤기 모습 등 얼음판 바깥에서의 재미도 전달했다.
‘유튜버 곽윤기’에게 그늘이 없었던 건 아니다. 사실 그가 유튜브에 손을 대기 시작한 3년 전 그를 바라보는 일부 관계자들은 걱정부터 했다. 나이 서른을 넘겨 다음 올림픽을 준비한다는데, 말 많고 탈 많던 쇼트트랙 판에서 유튜브까지 시작한다니 의욕이 무리수가 돼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건 아닐지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활동 초반엔 영상 대표사진(섬네일) 내 용어선택 탓에 젠더감수성 논란에 휩싸였고, 여자팀의 ‘왕따 주행’ 논란과 관련해 양비론을 내세웠다가 거센 비판을 받고 영상을 삭제하는 등 ‘비싼 수업료’를 치르기도 했다.
곽윤기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유튜버 최초의 메달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는 채널 개설 때부터 유지해온 빙상 저변 확대를 위한 목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이 두루 유튜브 콘텐츠에 활발히 참여하며 최근 수년 사이 성폭력, 파벌 다툼 등으로 얼룩졌던 빙상계 어둠도 어느 정도 걷어낸 모습이다. 팬들에게 쇼트트랙의 재미를 전할 수 있는 새로운 접점도 마련했다. 그의 골드버튼 도전이 올림픽 금메달 도전 이상의 가치를 지녔단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쇼트트랙을 바라보는 국민들 시선이 각종 부조리가 드러나기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다. 선수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끌어올린 쇼트트랙의 인기를 지키고 키우는 건 다시 빙상계 어른들 몫이 됐다. 이른바 ‘손찌검 대물림’으로 대표되는 고질적인 폭력과 폭언을 비롯해 파벌 다툼, 승부조작이 되풀이된다면 한국 쇼트트랙은 체육계 부조리에 갈수록 엄격해지는 국민들로부터 언제든 외면받을 수 있다. 손에 잡힌 한줌 모래처럼 사라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