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분야다. 앞서 김대중 정부의 초고속 인터넷 구축과 노무현 정부의 소프트웨어(SW) 육성전략은 한국을 ICT강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유력후보들의 ICT 분야 공약은 여전히 구체성이 떨어져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국일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IT 정책 담당자에게 핵심 공약을 질의했다.
두 후보는 모두 ICT 정책에 "최소한의 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청년층의 표심을 겨냥한 게임 공약 등에서 이 후보는 "공정한 시장을 위해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윤 후보는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15일 윤영찬 민주당 미디어 ICT 특위 위원장은 한국일보에 "디지털 혁신을 위해서는 규제 환경 개선이 최우선 과제"라며 ICT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명했다. 특히 "신산업에 대해서는 법률, 정책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식 규제'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그동안 정부가 규제 일변도 기조를 보여왔던 게임 산업에도 전향적인 태도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최근 논란이 된 '돈 버는(P2E) 게임'에 대해 윤 위원장은 "디지털 경제 시대에 높은 잠재력이 점쳐지는 신산업의 성장이 낡고 오래된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게임 이용자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해선 "과도한 구매 비용을 유도해 사행성을 부추기는 다중 뽑기는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 측 역시 ICT 정책의 지향점으로 '규제 혁파'를 내세웠다. 정명애 국민의힘 미래ICT 특위 위원장은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없애 민간에서 수많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게임 산업에 대해서도 "관련된 규제를 최대한 타파하고, 국회와 협의해 P2E 산업을 신장할 여러 방안을 논의해 관련 법안을 입법할 것"이라며 이 후보 측과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확률형 아이템 문제에도 "현재 게임업계 사이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풍조가 만연하다"며 "이는 자율적으로 시정되기 힘들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후보는 지난해 카카오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으로 본격화된 플랫폼 규제에 대해서는 상이한 입장을 보였다.
윤영찬 위원장은 "전통산업 대비 강자가 되는 플랫폼 사업자의 골목상권 진입과 정보독점 현상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고민 역시 필요하다"며 "플랫폼 서비스 과정에서 일종의 독점시장이 생겨나고, 과도한 수수료 문제가 발생한다면 이런 체제를 깨는데 정부나 지자체도 시장 경쟁자로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재명 후보는 경기도지사 시절 배달 응용프로그램(앱) 수수료 문제를 비판하며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배달 앱을 내놓는 등 공공이 시장에 개입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반면 정명애 위원장은 "기술혁신과 새로운 산업의 육성을 위해 가능한 한 플랫폼에 관한 규제를 최소화한다는 것이 윤석열 후보의 입장"이라며 "일방적으로 플랫폼의 골목상권 침해를 규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함께 협의하면서 자율적인 규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후보가 내놓은 공공 앱에 대해선 "심판이 선수까지 같이하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며 "오히려 민간 영역이 좀 더 규모를 늘리고 활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공공 영역이 뒤에서 돕는 방식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후보의 공약에 대해 전문가와 업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표한다. 두 후보 모두 젊은층 표를 의식해 게임 산업 규제 완화책을 발표했지만, 실현 가능성과 정책의 구체성에는 의문이 생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은 "P2E와 확률형 게임은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며 "사행성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지 않고 P2E 게임 산업은 육성하되, 확률형 아이템은 규제하겠다는 공약은 현실성 없는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두 후보 모두 규제완화 기조를 밝힌 만큼 그동안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서비스 출시를 막아왔던 대못 규제가 뿌리 뽑힐 것이란 기대도 나왔다. 2018년 출시됐다가 규제에 발목이 잡혀 서비스가 중단된 승차 공유 서비스 '타다'는 현 정부의 신산업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메타버스, 대체불가토큰(NFT) 육성을 위한 네거티브 규제와 세제지원 정책은 상대적으로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