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패션 정치'가 눈길을 끌고 있다. 16일 광명성절(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일)을 앞두고 선친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선글라스와 점퍼 차림으로 등장해 '김정일 따라하기'에 나서면서다. '백두혈통'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켜 대북제재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으로 악화된 민심을 다잡으려는 행보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12일 평양 화성지구 1만 가구 살림집 건설 착공식에 카키색 점퍼에다 선글라스를 끼고 등장했다. 생전에도 선글라스와 '야전 솜옷'으로 불리는 점퍼를 즐겨 입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연상케 하는 차림이다. 김 위원장이 겨울철 현지지도에서 주로 '가죽 롱코트'를 즐겨 입었던 것과도 대비된다. 2014년 4월 백두산 지구 혁명전적지 답사 이후 거의 쓰지 않았던 선글라스도 다시 꺼냈다.
김 위원장의 행보는 집권 직후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모방해왔던 행보와 유사하다. 그는 한때 체중을 늘리고 중절모와 뿔테 안경을 착용하며 외형적으로 김일성과 비슷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당시에도 당 중심 통치구조 부각과 체제 정통성을 과시하려는 목적이었다. 이번에도 아버지 김정일과 비슷한 모습을 연출,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유일영도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짙다.
'김정일 패션'으로 등장한 시기와 장소를 보아도 '선대 후광'을 최적화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평양 화성지구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 인근이다. 인민 생활 향상과 직결된 주거시설 건설이 성역화된 곳에서 가깝고 시기도 국가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광명성절과 맞물려 있다. 김 위원장의 정통성과 은덕을 강조하고 북한 주민들의 자부심과 충성심 고취에 안성맞춤이다. 대북제재 및 국경봉쇄 장기화로 '한계치'에 이른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의도가 반영돼 있다.
이달 1일 평양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열린 설 명절 기념공연에 자주색 저고리와 검은색 치마 차림으로 등장한 부인 리설주의 '한복 차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김정일의 생모이자 '백두산 여장군'으로 신격화된 김정숙을 염두에 둔 복장이다. 평양 시민들은 "리설주가 선복(한복)을 입은 것을 보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김정숙 어머님이 떠오른다"는 말을 했다고도 전해졌다.
정대진 한평정책연구소 평화센터장은 "김정은 일가의 '따라하기 패션'은 백두혈통 가계의 정통성을 보여주면서 '김정은 체제'의 유일무이한 권력자가 누군지 확고히 보여주려는 자신감의 증거"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