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지도자를 만났을 때

입력
2022.02.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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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뒤면 대통령 선거다. 후보들의 중국 관련 외교 정책은 대체로 진영에 따라 예상되던 내용이었는데, 동계올림픽 때문인지 돌연 친중, 반중의 외줄 위에서 칼춤을 춘다. 아무 말 대잔치를 보다가 문득 ‘한시외전(韓詩外傳)’의 고사가 떠올랐다.

노나라 여자 영(嬰)이 밤중에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까닭을 묻자, 위(衛)나라 세자가 어질지 못하다는 말을 들어서라고 한다. 친구들이 황당해서 위나라 세자가 어질지 못한 것은 제후들이 걱정할 일인데 왜 네가 우느냐고 했다. 그러자 영이 말했다.

“전에 송나라 환사마가 그 임금한테 죄를 지어 노나라로 도망쳐 왔는데, 사마의 말이 고삐가 풀리는 바람에 내 채소밭에서 나뒹굴며 아욱을 다 먹어치웠어. 당시 다른 주인들도 수입의 절반을 잃었고.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공격하자 제후들이 전전긍긍했는데, 그때 노나라는 월왕에게 여자를 바쳤어. 내 언니도 끌려가자 오라버니가 찾아 나섰다가 길에서 비명횡사했어. 월나라 군사가 공격한 곳은 오나라인데 죽은 것은 오히려 내 오라버니야. 이런 일로 볼 때 사람들의 화와 복은 서로 관련되어 있어. 지금 위나라 세자가 매우 어질지 못하여 전쟁을 좋아하는데, 세 명의 남동생이 있는 내가 어떻게 걱정이 없을 수 있겠어?”

영은 자기 집안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면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기서 ‘노영읍위(魯嬰泣衛·노나라 영이 위나라 때문에 울다)’라는 말이 나왔다. 지혜로운 처자를 내세워 정보에 기민해야 살 수 있다는 난세의 생존법을 설파했다.

그런데 미국의 대법관 루이스 브랜다이스(Louis Brandeis, 1856-1941)는 다른 차원에서,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이 초래할 위험을 지적했다.

“정부가 선의를 갖고 정책을 펼칠 때야말로 우리의 자유가 가장 위협받을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 폭군들이 자유롭게 태어난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할 때 이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열정적이고 좋은 의도를 가졌지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유가 은연중에 잠식되는 것이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자유를 훼손한다는 통찰은 실로 놀랍다. 중국의 ‘노영읍위’ 고사가 손익과 안위에만 집중한 것과 비교하면 더 그렇다. 자유에 대한 이런 통찰은 프랑스 정치인 토크빌(A. Tocqueville, 1805-1859)의 ‘미국의 민주주의’에서도 볼 수 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보호자들을 직접 선출했다면서 본인의 노예 상태를 정당화시킨다. 그들은 각자가 끈에 묶여서 조정되는 것을 허용한다. 왜냐면 그 사슬의 끝을 잡고 있는 것은 개인이나 특정 계층의 누구도 아닌 ‘대중’, ‘민중’이라는 막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를 통해서 시민들은 자신들의 주인을 선출할 때만 잠시 노예 상태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고는 이내 노예 상태로 돌아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행정적 전제주의와 주권재민 원칙 사이의 타협에 만족한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국가의 권력에 바침으로써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할 모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팬데믹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공감되는 말이다. 영도자에 의지하지 않는 민주주의와 선거제도를 유지하려면 개인이 각성한 독립체로 사는 정치의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생 공부하며 정신을 고양하는 자유인, 절대개인(Absolute Individual)의 시민사회가 선행되어야 한다.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