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없는 의회민주주의의 비극

입력
2022.02.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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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오스트리아 내전

오스트리아 내전은 양대 이념 정당의 비타협적 대립이 불러올 수 있는 파국적 예로 흔히 소환되는 대표적 사건이다. 1934년 2월 12일 시작돼 만 나흘 동안 이어진 이 내전은 중남미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유럽 한복판에서 의회민주주의 시스템 안에서 빚어진 사건이라 충격을 안겼다. 내전으로 좌파 진영에서 196~1,000여 명, 우파 진영에서 105~118명이 숨졌다.

오스트리아는 1차 세계대전 후 합스부르크제국의 폐허 위에서 의회민주주의 국가로 새 출발했다. 농촌을 지지기반 삼아 구집권 세력과 가톨릭 교회 세력이 뭉친 기독교사회당 중심 우파 진영(검은 진영)과 도시 기반 노동자와 지식인들이 주축인 사회민주노동자당 중심의 좌파 진영(붉은 진영)이 양대 정파였다. 집권 우파 진영은 정규군 외에 '향토방위대(Heimwehr)'란 이름의 민병대를 조직해 운영했고, 좌파 진영도 '공화수호동맹(Republikanischer Schutzbund)'이란 준군사조직을 꾸려 맞섰다.

1927년 초 우파 민병대 협력조직원들이 시위대에 발포해 8세 소년과 1차대전 베테랑 시민을 사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좌파 진영의 규탄 집회 및 시위가 이어지던 와중인 그해 7월, 정부가 기소된 발포 관련자 3명을 모두 무죄 석방했다. 좌파 진영은 7월 총파업으로 맞섰고, 성난 군중은 경찰서를 습격하고 법무부 건물에 총격을 가했다. 89명이 숨지고 다수가 체포됐지만, 봉기는 이내 진압됐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대규모 실업과 기근 사태가 가중되자 좌우파 대립 양상은 더욱 치열해졌다. 향토방위대가 1934년 2월 12일 북부 린츠(Linz)시 좌파 진영 소유의 한 호텔(Hotel Schiff)에 대한 무단 압수수색을 벌이자 공화수호동맹 민병대가 출동했고, 총격전은 오스트리아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 우파 총리의 명령으로 정규군이 투입되면서 내전은 2월 16일 끝났지만, 4년 뒤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은 나치독일 합병이라는 운명을 맞이했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