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만 모른다

입력
2022.02.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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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보수가 진창에 빠지자 더불어민주당은 장기 집권을 꿈꾸며 웃었다. 이해찬 전 대표가 '민주당 20년 집권론'을 처음 말한 게 지난 대선 때였다. 민주당 정권은 그러나 다시 쉬어가야 할지도 모르는 처지가 됐다.

왜일까. '김건희 녹취록'이 흐지부지됐기 때문일까. 뭘 모르는 유권자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의 능력을 몰라주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허물을 몰라보기 때문일까. 북한이 미사일을 자꾸 쏘더니 하필 대선 직전에 중국이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을 가로챘기 때문일까. 민주당의 오랜 의심처럼 검찰과 언론이 민주당만 미워하기 때문일까.

얼마 전 만난 민주당 원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푸라기만큼의 구실만 있어도 이번엔 국민의힘을 찍겠다고 국민이 작정한 거다. 민주당을 찍는 게 더 X팔린 지경이 된 거다. 힘을 몰아 줬더니 겨우 그렇게 쓰느냐, 이제는 너희가 권력을 조금이라도 더 가질까 두렵다는 거다." 탄핵 정당을 단기간에 회생시킨 것도, 윤 후보를 유력한 미래 권력으로 밀어 올린 것도 결국 민주당이라는 얘기였다.

민주당은 지난 5년간 차곡차곡 벌점을 쌓았다. 보수는 치부(致富)를 하고 진보는 정의에 헌신한다는 믿음을 배반한 부동산 내로남불의 벌점, 내 새끼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엔 너나 없다는 걸 까발린 조국 사태의 벌점, 거대 여당의 힘을 주체하지 못해 의회주의에 흠을 낸 입법독주의 벌점, 당헌에 새긴 선거 무공천 약속을 태연하게 깬 국민 무시의 벌점. 무엇보다, 누적된 벌점에도 몸을 낮추지 않은 오만의 벌점.

민주당은 선거 민심을 매번 오독했다. 보수 정당이 참패한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결과는 살벌한 경고였다. "부패하고 무능한 모든 권력이 비극을 맞으리라." 민주당은 스스로의 승리라고 착각했다.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은 주저한 끝에 민주당을 재신임했다.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잘해보라"고 주의를 준 것이지만, 민주당은 "마음대로 해보라"로 흘려들었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대패가 민주당 심판 통첩이었다는 것도 민주당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사이 국민의힘은 칼을 갈았다. 한때의 원수였던 검증되지 않은 정치 신인을 대선후보로 세우고 보수의 옥새를 넘겼다. 윤 후보 주연의 정권교체 드라마는 어쨌거나 흥행 중이다. 윤 후보가 뜬 것도, 별의별 결점에도 지지율이 훅 꺾이지 않는 것도, 민주당 덕분이라는 걸 민주당만 여태 모른다. 자기반성이 없는 까닭에 86세대 용퇴를 약속하면서 "나는 빼고"라는 전제를 달고, 윤 후보의 적폐청산 수사 발언을 키우는 데 사활을 거는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에 나타난 대선 판세는 접전이다. "왜 또 민주당이어야 하는가"를 모르겠는 만큼 "왜 꼭 윤석열이어야 하는가"도 모르는 게 요즘 민심이란 뜻이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대선까지 남은 23일은 길고, 민심은 영원히 누구의 편도 아니다. 승부가 어떻게 나든, 민주당이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이겨서 다시 집권여당이 된다면 부디 겸손해지기를, 진다면 빨리 정신 차리고 유능한 야당이 되기를 바라는 시민의 마음.

"내 안에 너 있다." 2000년대를 휩쓴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대사다. "내 안에 잘못 있다." 민주당은 거기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최문선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