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회사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며 1년 만에 코로나19에 따른 최악의 부진을 말끔히 씻어냈다. 국제유가 상승과 함께 정유사의 핵심 수익지표인 정제마진도 오름세라 업황도 초호황이지만, 정작 주가는 지지부진해 투자자 속을 태우고 있다.
13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 빅4가 지난 한 해 거둔 영업이익은 7조2,333억 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5조 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봤는데, 불과 1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셈이다.
실적 상승의 배경은 복합적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정제한 뒤 이를 다시 휘발유, 경유와 같은 석유 제품을 만들어 수출한다. 정유사로선 들여온 원가(원유가격·수송비 등)보다 비싼 값에 제품을 팔수록 돈을 번다. 이를 정제마진(제품가격-원가)이라고 한다.
유가가 뛰어도 석유제품 수요가 없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싼값에 팔 수밖에 없는데, 지난해엔 국제유가가 뛴 데 맞물려 각국이 코로나 빗장을 풀고 경제활동을 재개한 덕분에 석유제품 수요까지 덩달아 늘었다. 이 덕분에 정유사 정제마진은 손익분기점(4달러대)을 훨씬 웃도는 7.5달러(10월)에 이를 만큼 업황이 좋았다.
더구나 유가가 뛰면 정유사가 기존 보유하고 있던 원유 가치도 올라가 회계상 재고자산 평가이익이 생기는데, 에쓰오일의 지난해 4분기 재고자산 평가이익은 8,400억 원에 달했을 만큼 정유사들은 고유가 덕을 톡톡히 봤다.
올해도 경영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달 첫째 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7.5달러로 오름세인 데다, 국제유가는 이달 초 90달러 선을 돌파한 데 이어 올여름엔 100달러를 넘어설 거란 전망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정작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에쓰오일은 실적 기대감에 지난달 초 9만7,300원까지 올랐지만, 현재(10일 종가)는 8만7,200원으로 10%나 내렸다. 지난달 중순 27만 원선까지 올랐던 SK이노베이션 주가도 20만 원선까지 흘러내렸다. 박한샘 SK증권 연구원은 "정제마진의 추가 상승 여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정제마진이 고점에 육박했다는 것이다.
증권사들도 이런 점을 들어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의 목표주가를 잇따라 낮춰잡고 있다. SK증권에 따르면 에쓰오일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조3,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0% 하락하고, SK이노베이션은 1조7,000억 원으로 소폭 줄어들 걸로 전망된다.
탄소중립과 탈탄소가 글로벌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친환경과는 거리가 먼 석유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가 투자자 관심을 끄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석유 중심의 정유사업은 장기적으로 수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어 정유사들도 지금에 안주했다간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크다"며 "정유사마다 앞다퉈 수소 등 친환경 사업에 적극 투자에 나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