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직업이 있었단다" 경단녀 용기 준 '마마돌'의 춤

입력
2022.02.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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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맘카페' 들썩인 예능 '엄마는 아이돌' 
평균 9년 '경력 단절' 가수 6명의 '이름 찾기'
집에서 세 딸 낳고 육아가 특기된 아이돌
"울면서 봤다" "올림픽처럼 응원" 
별 "JYP 데뷔보다 힘들어"
13년 공백 양은지 "'광야'가 뭐죠?"
육아에 치여 K팝과 담 쌓은 다둥이맘들

세 딸을 3년 터울로 모두 집에서 낳았다. 2013년 결혼 후 그룹 원더걸스 리더였던 선예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도시락 싸기, 등교·등원 그리고 다시 식사 준비. 이런 순간이 9년 동안 쌓이면서 선예의 특기는 가사와 육아가 됐다.

tvN '엄마는 아이돌'은 이렇게 엄마가 된 아이돌과 춤꾼 6명을 다시 불러 모았다. 선예를 비롯해 애프터스쿨 가희, 쥬얼리 박정아, 베이비복스리브 양은지, 별, 현쥬니 등 공백기가 평균 9년에 달하는 경력 단절 엄마들로 팀을 꾸린 뒤 석 달의 준비 기간을 거쳐 그들을 다시 무대에 오르게 하는 기획이었다.

경력 단절을 끊는 과정은 가시밭길이었다. "목소리가 굵어졌다" "춤에 힘이 없다". 이런 혹평을 딛고 일어서려는 엄마가 된 아이돌의 도전에 전국의 '맘카페'엔 '2022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도 안 보고 응원했다'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누구의 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는 이들을 향한 또 다른 엄마들의 지지이자 연대였다.

그렇게 탄생한 그룹 마마돌은 신곡 '우아힙'을 내고 최근 음악 방송에 출연했고, 작은 공연도 치렀다. 엄마로서의 시간은 어땠으며, '독박 돌봄 독립'은 무슨 의미였을까. 짜릿한 반전을 보여준 '다둥이 엄마' 별(김고은·39)과 양은지(38)를 종방 후인 지난주 전화로 각각 만나 그 얘기를 들었다.


"자극받았다는 6남매 다둥이 엄마"

"6남매의 다둥이 엄마가 사회관계망서비스로 '언니 보면서 나도 내 삶을 위해 어떤 거라도 해 봐야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어요. 쏟아지는 응원을 받으며, 다둥이맘이 이렇게 많구나 놀랐어요."

방송인 하하와 결혼해 세 남매를 얻은 별은 올해 10년 차 엄마다. 그의 2002년 데뷔곡 '12월32일'이 연말이 되면 곳곳에서 소환됐지만, 그의 무대는 사라졌다. 별은 "아이 키우느라 하루하루 허둥대느라 경력 단절을 고민할 여력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 활동 계획을 잡으면, 아이를 함께 돌보던 돌봄 도우미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등 육아 문제로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그런 별의 지원군은 결국 친정 엄마였다. "아버지 건강이 오래전부터 안 좋아서,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일찍 뛰어들었어요. '엄마는 강하다'고 느끼면서 자랐죠. 엄마가 '할 수 있을 때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몇 개월 동안 연습하며 다시 꿈을 꾸는 동안, 우리 아이들을 돌봐 주신 건 엄마라 죄송하고 감사해요."

발라드 가수 별에게 '엄마는 아이돌'은 모험이었다. 무대에서 한 번도 춤을 추지 않았던 그는 눈물을 훔치며 안무를 익혔고, 예스러운 창법을 바꿨다. 별은 "JYP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 준비할 때보다 힘들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연습이 없는 날 집에 있으면 연습하러 너무 나가고 싶더라"는 말도 했다. 산더미같이 쌓인 집안일로 정작 집에서 제대로 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아이를 보느니 차라리 밖에서 일을 하는 게 몸은 편하다는, 이 시대 '워킹맘'의 모습이다.

마마돌의 축제는 이달 초 끝났다. 별의 목소리는 푹 잠겨 있었다. 둘째와 셋째가 감기에 걸려 사흘째 잠을 설쳤다고 했다. 별의 삶은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몸은 너덜너덜해졌지만, 자존감은 수직 상승했어요. 올해 데뷔 20주년이라 올가을에 낼 앨범 작업을 시작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제 딸이 나중에 커서 마마돌 자료를 보고 엄마의 도전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이 머리 빨리 말리기가 특기"였는데

4,553일. 2007년 베이비복스리브로 데뷔한 양은지가 무대를 떠난 시간이다. 2009년 축구 선수 이호와 결혼한 뒤 세 딸을 키우느라 그의 경력은 13년 동안 뚝 끊겼다. 양은지는 도우미 없이 집안일을 도맡았고, 운동선수인 남편 내조에 전념했다. 그런 양은지는 '엄마는 아이돌'에 '아이들 머리 빨리 말리기'를 특기로 써 지원했다. "음악방송에서 노래를 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거라 상상도 못 했어요. 처음엔 '못 하겠다'고 했죠. 되레 아이들이 '엄마, 한번 제대로 해 봐'라고 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양은지는 발성부터 다시 배웠다. 아이들 키우며 목을 너무 쓴 데다 갑자기 음역대가 높은 곡을 부르다 보니, 나빠진 성대는 더 악화했다. 양은지는 "도망가고 싶고, 녹화하는 날이 안 왔으면 좋겠더라"며 "연습 후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파스를 붙여주겠다고 달려들고, 육아를 도와주느라 초췌해진 친정 엄마를 보고 꼭 해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양은지는 에스파의 히트곡 '넥스트 레벨' 무대를 준비할 때 '현타'가 왔다. "왜 광야로 걸어가?" 그는 요즘 K팝의 핵심인 '세계관'을 아예 몰랐다. 첫아이를 낳은 2010년 후 육아에 치여 자신의 일터였던 K팝 시장 흐름을 놓친 탓이다.

양은지는 마마돌 노래 '우아힙'에서 "니(너희)들이 애 셋을 키우는 맘의 마음을 알어?"라고 랩을 한다. 양은지의 세 딸은 응원봉을 흔들며 엄마를 응원했다. 객석에서 며느리를 바라보는 시어머니의 눈가는 촉촉했다.

"마지막 방송 공연이 끝난 뒤 시어머니가 안아주면서 '어린 나이에 일찍 시집와서...'라며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울컥했죠. 아이들은 '엄마가 직업이 있었구나'라면서 놀라워했어요. 집에서 늘 밥과 빨래를 해주는 모습만 봤으니까요."

마마돌로 지낸 석 달 후 양은지는 무릎 관절이 나빠져 병원에 다닌다. "이대로 내려놓긴 싫어요. 다시 몸이 굳지 않게 운동이라도 꾸준히 해야죠. 언제 기회가 다시 올 지 모르잖아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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