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빈손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 시간 넘게 담판을 벌였지만 입장 차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돌파구가 좀체 보이지 않는 상황 속, 미국과 러시아 양국이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철수 명령까지 내리면서 군사 충돌 긴장감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62분간 전화통화를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군사력을 증강하자 미국 등 서방이 침공 우려를 제기하면서 양측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12월 30일 전화 통화 이후 44일만이다. 그러나 이날 통화에서도 우크라이나 사태 해소를 위한 특단의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백악관은 보도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을 감행한다면 동맹ㆍ파트너와 함께 단호히 대응하고 러시아가 신속하고 심각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은 동맹과 충분한 조율을 통해 러시아와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 준비가 돼 있다면서 “우리는 다른 시나리오에도 똑같이 준비돼 있다”고 덧붙였다. 미 당국자 역시 브리핑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해 공개적으로 제기한 모든 주제를 다뤘다”면서도 몇 주간 전개된 상황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만들진 못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날 정상 통화에 대해 “미국의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가운데 이뤄졌으나 대화 내용은 균형 잡히고 효율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안보 보장에 대한 생각을 전했지만, 불행히도 러시아의 주요 우려 사항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 안보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견해를 신중히 검토하기로 합의했다”며 “조만간 우리의 반응을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통화를 이틀 앞당긴 이유를 미국 탓으로 돌렸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오늘 대화는 당초 14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미국의 히스테리 때문에 당겨졌다”며 “미국이 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설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1일 유럽 정상들과 화상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일을 오는 16일로 제시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작년 12월에도 우크라이나 위기 해소를 위해 두 차례 통화했지만 양측 모두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해법을 찾지 못했다. 이날 두 정상 통화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도 100분가량 통화했다. 양 정상은 유럽 안보 상황, 안정에 대해 계속 논의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표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 동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수 차례 밝혔지만, 미국은 러시아가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침공 시 대대적인 제재 등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력 경고하고 있다. 이후 미국 등 서방과 러시아는 잇단 외교적 접촉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아직 긴장 해소의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갈등 수위가 좀처럼 낮아지지 않으면서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는 자국민과 외교관들에게 현지를 떠나라고 속속 권고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주재 미국 대사관은 트위터에서 “국무부가 긴급한 임무가 없는 대사관 직원들에게 대피를 명령했다”며 “러시아의 계속된 군 병력 증강 때문이며, 이는 러시아의 중대한 군사 행동을 의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 내 미국인은 늦어도 48시간 이내에 대피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러시아도 주우크라 대사관 인력 철수를 지시했다.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또는 제3국의 도발 가능성을 우려해 현지 외교 공관을 ‘최적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적화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공관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만 남기고 나머지 인원은 철수하겠다는 의미다. 독일과 리투아니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웨덴, 벨기에 등도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자국민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