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프간 동결자금 8조원 중 절반 9·11테러 배상금으로 쓰인다

입력
2022.02.12 04:30
바이든 美 대통령, 행정명령 서명
아프간 미국 내 자산 절반 9·11테러 희생자 유족에
나머지 절반은 아프간 인도주의 지원 기금으로
아프간 자산 9·11배상금 사용 논란될 듯

미국 내 동결된 아프가니스탄 자산 70억 달러(약 8조4,000억원)의 절반이 9·11테러 희생자 유족에 대한 배상금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나머지는 아프간 주민들을 위한 인도주의 기금으로 쓰인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뉴욕연방준비은행에 예치돼 있는 아프간 정부 자산 중 절반인 35억 달러는 아프간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법원이 2001년 9·11테러 희생자 유족에게 배상금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NYT는 이번 조치가 미국이 아프간에서 치른 20년 전쟁의 법적, 정치적, 인도주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내 아프간 자산은 지난해 8월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동결됐다. 탈레반은 자금을 받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였지만 포용적 정부 구성과 인권 존중 등을 요구하는 미국의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협상에 실패했다.

앞서 9·11테러 희생자 유족들은 테러를 주도한 극단주의 이슬람 무장조직 알카에다를 비롯해 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탈레반 등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고, 지난 2012년 미국 법원은 유족 승소 판결을 했다. 당시 배상금이 70억 달러에 달했지만 배상금을 받을 방법이 없어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재점령하면서 유족들은 법원에 미국 내 아프간 자산을 배상금으로 압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미 정부는 당시 피해자 배상 이외에도 다양한 법적ㆍ외교적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이유로 개입해 법원의 결정을 미뤘다. 실제로 아프간 자산을 탈레반의 자금으로 간주하고 압류할 경우 미국이 탈레반을 아프간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탈레반이 아닌 아프간 합법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지원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NYT는 백악관의 아프간 자산 집행 관련 심의에 참여한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최근 아프간의 경제적·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자산 집행에 대한 의견이 커졌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 경제는 현재 붕괴 위기에 처해 있으며 식량과 연료 부족 등으로 아프간인 90%가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아프간 자산을 배상금으로 지급하는 데 대한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9·11테러 희생자 유족 중 일부는 "아프간 자산을 배상금으로 지급하는 것이 무고한 아프간인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샤 모하마드 메라비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는 "아프간 자산을 아프간에 투입하더라도 아프간 경제상황을 회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좀 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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