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처음으로 공구업체와 협업해 몇백 개의 세트 상품을 준비해서 팔았어요. 그런데 판매가 안 됐고, 결국 아빠가 거의 반을 사주셨죠. 아빠가 치과 환자들한테 주겠다고 사준 거예요." (20대 여성 유튜버)
# "오늘은 샤넬 신발이랑 가방 새로 산 거 언박싱 해볼게요. 너무 예쁘죠? 근데 저는 이게 사실 필요해서 산 게 아니에요. 구독자 여러분들 보여드리려고 산 거에요." (40대 여성 유튜버)
# "주로 이용하는 백화점은 '신강(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에요. 이곳에서 대부분의 명품을 사요. 영수증 인증할게요. 보시면 신강에서 구입한 거 보이시죠?" (20대 여성 유튜버)
유튜브 세상에서 재력(財力)은 막강한 콘텐츠다. 값비싼 명품을 구매해 언박싱하거나, 5성급 호텔 투숙기, 여객기 1등석 체험기 등은 많은 조회수와 구독자를 이끄는 '스테디셀러' 아이템이 됐다. 조회수가 높을수록 돈을 버니, '돈이 돈을 부른다'는 말은 온라인 세상에서도 통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턴가 자신의 재력, 즉 부유함을 드러내 과시하는 유튜버들이 늘고 있다. 의사 아버지를 둔 덕분에 부족함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성장 배경을 뽐내거나, 백화점 명품관에서 쇼핑하고 호텔에서 식사하며 아무런 걱정없이 사는 대학생의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세상이다.
이때 뼈속까지 '금수저'라는 인증 같은 게 있으면 금상첨화다. 금수저라고 인정 받으면 이상하게 구독자가 몰려들고 추앙 세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최근에 불거진 유튜버 송지아(25)의 '짝퉁 논란'도 이런 현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송지아는 패션 유튜브로 활동하며 주로 명품을 소비하는 영상으로 주목 받았다. 그러다 20대 젊은 여성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한강뷰의 고급 아파트가 시선을 끌었다. 또 부모님, 남동생까지 등장해 식사하고 여행하는 단란한 가족의 모습도 자주 비췄다. 마치 공주처럼 곱게 자란 분위기를 풍겼는데, 금수저일 것이라는 추측이 일었다. 그는 유튜브에서 금수저가 아니라고 했지만 "어릴 때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부모님이 다 해줬다. 감사하다"고 말해 부유하게 자란 듯 보였다.
그러나 금수저인 줄 알고 추앙했던 팬덤은 일부 가품 의류와 가방 등을 착용한 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특별할 것 같았던 그의 호화로운 생활이 사실은 허상이었다는 것에 분노했다. 결국 비뚤어진 과시욕이 부른 참사였다.
"매년 친구랑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공부했는데, 이젠 다 유학이나 군대 갔어요. 이제 저 혼자 남았네요."
누가 들어봐도 "나는 금수저"라고 말하는 듯하다. 20대 남대생인 해당 유튜버는 백화점에서 명품을 사고 값비싼 호텔식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하루를 보낸다. 심지어 백화점 VIP 라운지에서 공부하고, 얼마나 자주 갔으면 라운지에서 뭐가 맛있는지 추천할 정도다. 일반 대학생이라면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일 테지만, 그는 '라공족(라운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임을 당당하게 밝히며 뽐냈다.
그는 강남 소재 한 백화점의 '퍼스트 라운지'를 소개했다. '퍼스트 라운지'에 입장하려면 백화점 VIP 클럽 회원이어야 한다. 무료로 다과와 음료를 즐기며 쉴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가득 차 자리가 없다면서 한 단계 더 높은 등급의 '프라임 퍼스트 라운지'가 생겼으면 한다고 했다.
'프라임 퍼스트 라운지'는 해당 백화점의 경우 연간 구매 금액이 1억 원 이상 되는 '다이아몬드' 등급 이상 고객만 입장할 수 있다. 스스로 '다이아몬드' 등급 이상 회원이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드러낸 셈이다. 아무리 봐도 '엄마 찬스'일 확률이 높지만.
이 남대생 못지 않은 여대생도 있다. '대학생 일상'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영상들은 도저히 20대 초반 대학생들이 할 수 없는 일과로 가득하다. 명품 쇼핑과 언박싱은 기본이고 피부과 시술, 골프 연습, 네일 관리, 속눈썹 펌, 호텔 식사 등이 대부분.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두르고 백화점과 호텔, 고급 음식점, 헬스장을 다니는 영상으로 '금수저'임을 부각한다.
'럭셔리 라이프'를 보여주는 아이템도 빼놓지 않는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여성들의 부의 상징으로 떠오른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 펜던트 목걸이(350만 원)와 까르띠에 저스트 앵 끌루 팔찌(400만 원대~1억 원대)를 착용한 모습을 수시로 선보인다. 최근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선망의 스타일인 알렉산더왕 크롭 스웨트 셔츠와 바지(총 70만 원대), 어그 털슬리퍼(14만 원대)도 신어준다.
40대 여성 유튜버들도 '큰 손' 임을 뽐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 40대 여성은 자신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라고 밝히며 "샤넬 매장에서 1,150만 원짜리 재킷을 산 이후 대기하지 않고 입장하게 됐다"고 자랑스럽게 털어놓는다. 또 다른 40대 여성은 수백만 원짜리 샤넬 부츠와 모자를 주말 농장에서 일할 때 착용하는 부유한 생활을 과시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법도 하지만 이들 유튜브 채널에 달리는 댓글은 칭찬 일색이다. 송지아 유튜브 채널에서 볼 수 있던 댓글들이 이곳에 달렸다. 여대생이 올린 영상에는 "항상 재밌게 보며 대리만족 하고 있다", "볼 때마다 힐링하고 간다"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줘서 감사하다" 등 상당히 호의적 댓글들이 넘쳐났고, 악성 댓글에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자 "나쁜 말하는 사람들 천벌 받아라" "괴롭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게 내버려 두고, 한 번 사는 인생 멋지게" 등 위로의 댓글도 눈에 띈다.
남대생 영상 댓글도 비슷하다. "대리만족으로 힐링된다", "방구석 대리만족 위해 정주행하고 있다", "부럽고 멋진 삶 보고 자극 받고 간다" 등이 대부분이다. 특히 강남권 백화점의 명품 남성 매장 정보, 명품 의류 및 액세서리 정보, 카페 디저트 추전 등을 문의하는 구독자들도 많았다.
아름다운 외모와 부유한 삶은 누구나 부러워할 뿐만 아니라 닮고 따라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래서 최근 유튜브에는 이런 럭셔리 라이프를 뽐내는 이들에게 '명품 입문백' 추천 등을 상담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이 우상화한 이에게 명품에 대한 조언을 듣고 구매까지 실천하는데, 이것을 '파노플리 효과(Panoplie Effect)'라고 한다.
파노플리 효과는 상류층을 선망하는 소비자의 소비 행태다. 어떤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그것을 소비할 것으로 여겨지는 계층 및 집단과 동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앞서 송지아의 팬덤 역시 그를 따라하고 닮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오히려 상류층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려 하고, 이를 위해 진품이 아닌 일부 짝퉁 제품에 손을 뻗은 행위는 쉽게 용서받지 못할 듯하다. 그는 부유한 이미지를 어필했고, 이를 활용해 조회수를 높여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내 능력 이상으로 보이고 싶은 과시욕에 짝퉁 가방을 찾는 일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4년 동안(2021년 8월 기준) 국내로 밀반입된 짝퉁 명품 핸드백 적발 건수는 총 1,866건으로, 금액으로만 따지면 총 4,679억 원이다. 이중 루이비통 짝퉁 제품은 같은 기간 총 1,484억 원, 샤넬 짝퉁 제품 701억 원, 구찌 짝퉁 제품은 295억 원 순이었다.
일상 생활에서 명품과 짝퉁의 경계가 흐릿한 것도 한몫한다. 포털사이트에 명품 브랜드나 제품명을 치면 해당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와 함께 짝퉁 쇼핑몰까지 함께 검색된다. 예를 들어 네이버와 다음에 '펜디 피카부백' '에르메스 버킨백'을 검색하면 이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다음에서 '펜디 피카부백'을 검색하면 진품과 가품을 파는 쇼핑몰이 함께 나열된다. 11일 오후 현재 피카부백 스몰 사이즈의 경우 가품이 3만 원대~10만 원대까지 검색돼 화면을 채웠다. 심지어 짝퉁인 주제에 '4차 리오더'까지 받은 제품도 있는지, 이를 글로 써 붙인 쇼핑몰도 있다. 마치 명품 아웃렛 흉내를 내며 수백만 원대인 델보의 브리앙백 짝퉁 제품에 '데미지 상품 50% 세일' 같은 글귀까지 적어 20만 원대로 판매한 곳도 있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이나 블로그 등을 통한 짝퉁 판매도 심각하다. 얼마전 SNS에선 짝퉁 제품 판매 '라방(라이브 방송)'이 진행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너무나 뻔뻔하고 당당하게 가품을 드러내놓고 판매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구매한 소비자도 있어 충격을 줬다. 그런데 "퀄리티가 떨어지는 C급"이라고 평가하며 구매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이미 짝퉁 시장도 빈익빈 부익부로 갈린지 오래다. 비싼 명품 대신 가품을 구입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품을 소지한 사람이 제품 손상이 두려워 똑같은 가품을 사서 드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 고가의 짝퉁 가방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과시욕에 의한 사치품 가격이 올라갈수록 명품 수요가 증대(베블렌 효과·Veblen Effect)하듯, 중고·짝퉁도 이러한 시장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이제 1,000만 원이 넘는 샤넬 클래식백의 경우 중고 시장에서 더 웃돈을 주고 판매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며 "짝퉁 시장도 소위 인기 제품의 '특급' 'A급' 가격이 함께 올라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