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피해자의 반전… 알고 보니 억대 사기 피의자

입력
2022.02.14 07:30
지인들 돈 빌려 룸살롱 업주에 투자했다가 떼여
"돌려막기 알고도 돈 빌려 투자" 되레 고소당해
투자 알선 수수료 챙긴 혐의도… 공범 전락 가능성

서울 서초구 소재 룸살롱 운영자인 A씨에게 거액의 투자금 사기를 당한 피해자가 피의자로 전락했다. A씨는 수십 명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 억원을 받았다가 돌려주지 않아 피소됐는데, A씨를 고소한 피해자 중 한 명도 투자 과정에서 사기를 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같은 피의자, 같은 사기수법인데… 경찰 결론은 다르다?)

13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분당경찰서는 지난달 B씨를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B씨는 A씨가 룸살롱과 함께 운영하던 대부업체의 직원이었다. 당초 B씨는 A씨의 사기 피해자로만 알려졌는데, B씨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경위는 이렇다. B씨는 2016년 A씨로부터 "1,000만 원을 투자하면 월 20만 원을 이자로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2020년까지 총 37억 원을 투자했다. B씨는 한때 투자금 1,000만 원당 40만 원을 매달 이자로 받기도 했지만, 2019년 말부터 돈을 제때 못 받고 이듬해부턴 원금 상환이 되지 않자 A씨를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다른 피해자 20여 명도 A씨를 개별적으로 고소했다.

알고 보니 B씨의 투자액 중 일부는 자기 돈이 아니었다. B씨는 2019~2020년 지인들에게 "내가 일하는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주면 상당한 이자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적게는 수천 만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 등 총 10억 원가량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6개월 내 변제를 약속받고 돈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지난해 B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B씨가 받은 돈을 회사가 아닌 A씨 개인에게 투자했고, A씨가 변제 능력이 없어 2019년 말부터 돌려막기 조짐을 보였는데도 B씨가 이자를 받을 수 있다고 속이고 여러 차례 투자를 받았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경찰은 특정 기간에 있어서는 B씨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 현재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고소인들은 불송치된 부분에 대해서도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황이다.

B씨는 A씨에게 투자자를 알선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어 이중으로 피의자가 될 처지에 몰렸다. 지난해 12월 서울 도봉경찰서로부터 A씨 사기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북부지검은 수사 과정에서 B씨 등이 중간 수수료를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유사수신행위 등 혐의로 입건할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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