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늘 이념타령에 과거를 헤매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경제는 당당히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 거친 도로사정에도 불구하고,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달려온 것이다. 만약 기업의 가치창출 활동마저 빈약했다면, 자원이 부족한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 있었을까.
지난 60년 우리 경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턱없이 부족한 강우량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수확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더 일찍 일어났고, 더 깊이 밭을 일궜고, 품앗이하며 더 늦게까지 일한 덕분이다. 손발이 붓고 근육이 지치더라도 참고 이겨내는, 하드 파워를 발휘하는 것 외에는 사실 답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20년간 몸의 근육에서 나오는 하드파워는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운 한계에 도달했다. 과학기술이라는 두뇌의 근육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거의 모든 기업들이 자체 연구소를 꾸려가며 스스로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한 이유다. 두뇌의 근육이 부족한 기업은 대부분 값싼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 중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좋은 기술이나 특허는 200여 개 나라의 국경을 관통하며 세계를 무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제 발로 딛고 있는 지구 외에, 또 하나의 디지털지구가 생겨났다. 유니버스(Universe) 외에 메타버스(Meta-verse)가 탄생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지구는 거대한 데이터의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며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간이다.
53년 전 발사된 아폴로11호의 컴퓨터 용량은 불과 64Kbyte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 는 자그마치 400만 배나 더 큰 256Gbyte 용량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전 세계인이 1년에 만들어낸 데이터의 총량은, 256Gbyte 스마트폰에 담아 쌓아두었을 때 그 높이는 지구에서 달까지 7번이나 왕복해야 할 정도다.
바야흐로 콜럼버스 이래로 500년 만에 찾아온 대항해시대, 바야흐로 데이터 대항해 시대의 도래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데이터 대항해 시대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튼튼하고 안전한 인공지능(AI)이라는 배가 필수적이다. 이 배는 바람, 증기, 전기로 움직이지 않는다. 핵심은 소프트파워다.
무한대를 향해 폭발하는 데이터 빅뱅시대는 원료를 제품으로 잘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상상(Imagination)을 혁신(Innovation)으로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세계 20위권의 기업들 중에서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하드파워 기업은 오직 '사우디 아람코' 하나뿐이다. 나머지 아마존, 구글 등 19개는 눈으로 보이는 제품이 아니라 상상(0)을 혁신(1)으로 만든 소프트파워 기업들이다.
이제 세계 5위권의 경제대국을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은 지금까지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직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길을 앞장서서 개척하는 것이다. 1을 2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0을 1로 만드는 것이다. 이 길은 누구도 아직 가본 적이 없기에 그 누구에게도 비난이 아닌 격려를, 실패하더라도 질책 아닌 용기를, 두려워하더라도 같은 편이 되어주는 따뜻한 문화가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소프트파워가 바로 그런 문화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걸맞은 리더십을 새로이 정립할 때가 되었다. 주인인 국민이 원하는 것은 깃발을 앞세우며 따라오라는 하드파워가 아니라, 마음을 열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미래지향형 소프트파워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리더십의 출발선은 과학적 마인드로 무장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새로운 도전을 격려하며 국민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줄 만한 정직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