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유기동물 위한 보호소 설립, 반대하지 말아주세요"

입력
2022.02.11 11:00
<35> 지자체 유기동물 보호소 설립 요구하는 반려견 '흰자'

편집자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으로 시작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많은 시민들이 동참하면서 공론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 못 하는 동물은 어디에 어떻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까요. 이에 동물들의 목소리를 대신해 의견을 내는 애니청원 코너를 시작합니다.


2019년 7월 남부권 최대 규모였던 부산 북구 구포개시장이 폐쇄된 것 기억 하시나요. 개를 사고 팔던 시장이 60년 만에 문을 닫으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요. 개 도살뿐 아니라 개고기 판매 등 모든 영업을 완전히 끝내는 첫 사례로 의미가 컸습니다.

저는 구포개시장이 폐쇄되면서 구조된 개 중 한 마리인 '흰자'(6세 추정)입니다. 구조가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식용으로 도축될 운명이었죠. 당시 구조됐던 상당수의 개들은 해외입양을 떠났는데, 저는 2020년 3월 국내 한 가정에 입양돼 지금은 반려견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산 북구, 경남 고성군 동물센터 건립은 '감감'

구포개시장 폐쇄 후 걱정이 없을 것 같았던 부산시와 북구, 동물단체에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당초 북구청은 구포개시장 부지 995㎡에 예산 20억 원(국비 6억 원 , 시비 14억 원)을 들여 '서부산 동물복지센터'(이하 동물센터)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소음에 대한 우려도 고려해 고양이 전용 보호소를 비롯 고양이 전문병원, 입양∙교육센터 등을 입주시킬 계획이었는데요.

하지만 북구청은 설립계획을 발표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시작조차 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말 국비 6억 원을 반납해야 했습니다. 부지 용도 결정은 구의회의 동의가 필요한데요, 구의회 측은 동물센터 설립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 의견이 최우선'이라며 동의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부산시 관계자는 "동물센터 건립을 포기한 것은 전혀 아니다”라며 “북구청과 충분히 논의하고 주민들의 합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자체와 구의회가 주민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경남 고성군도 유기동물 보호소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곳은 지난해 1월 배우 조승우씨가 반려견 '곰자'를 입양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고성군은 원래 보호소를 외부기관에 위탁 운영해왔습니다. 하지만 무분별한 안락사와 보호소 운영비 부정수급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2020년 9월부터 지자체 직영으로 전환을 했고 현재 고성군이 소유한 농업기술센터에 임시보호소가 만들어졌습니다.

고성군은 20억 원을 들여 이 임시보호소를 신축해 유기동물 복지를 높이고, 보호 수를 늘리려고 했는데요 역시 주민과 군의회의 반대에 부딪힌 겁니다. 그러는 사이 보호소 내 동물들은 서로 싸워 상처를 입거나 탈출해 사망하는 사고까지 벌어졌습니다. 경남도청으로부터 보호소를 짓기 위해 받은 8억 원은 결국 공원 정비 등 다른 곳에 쓰였습니다.

고성군 보호소의 입양홍보를 돕고 있는 동물보호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는 지난해 말 검찰에 고성군수와 군의회 의원 11명을 동물보호법 위반 등으로 고한 상황입니다. 김해경 비구협 입양문화팀장은 "현재 임시보호소를 운영하면서도 소음에 대한 민원은 3, 4건밖에 없는데 소음 등을 이유로 보호소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과 군의회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도 "군청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군의회와 주민들을 설득했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대전시보호소, 지역주민과 적극 소통으로 반대 설득

반면 대전시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는 이전 성공사례로 꼽힙니다. 지난해 4월 유성구 금남구족로에 신축 이전해 왔는데요, 이곳 역시 주민들의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는 3월 개장을 앞두고 있는 보호소 옆 반려동물 공원을 함께 지으면서 지역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공원 내 수익사업 기회 우선 제공을 통해 주민들을 설득해나갔다고 합니다. 또 설립 이후에도 주민들을 여러 차례 센터로 초청해 실제 제대로 운영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지난해 길을 잃거나 버려진 동물은 12만 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 해 유실∙유기동물 수가 10만 마리를 넘어서는 상황은 2017년 이후 5년째 계속되고 있는데요, 그만큼 동물들이 갈 곳은 더 필요한 게 현실입니다.

유기동물을 위한 공간이라고 해서 소음, 냄새가 심한 혐오시설로만 보는 건 편견입니다. 대전시의 사례처럼 오히려 보호소 동물 복지도 높이고 입양률도 높이는 한편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보호소 설립을 위해서는 지자체와 지방 의회가 유기동물을 위한 시설을 제대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설득에 나서야 합니다. 또 지역 주민들도 길을 잃고 버려진 동물들을 위한 공간 설립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지 말아주시길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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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