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은 지역의 유명 맛집이라서요. 우리 사장님(남편)은 국민의힘인데, 민주당 의원님들까지 많이 오시죠."
지난달 2일 늦은 점심시간. '구의원 단골집'으로 소문난 부산 해운대구의 한 숯불갈비집을 찾았다. 가게 문을 열자 주방에 있던 중년 여성이 서둘러 나와 자리를 안내했다. "구의회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데…"라며 말을 건네자, 여성은 "의장단이든 민주당 의원이든 가리지 않고 많이 온다"고 답했다. "워낙 이 동네에 오래 살기도 했고, 오래된 맛집이라서 그렇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구의원들이 애용한다는 이 식당 주인은 다름 아닌 해운대구의회 소속 장성철(65·국민의힘) 의원. 이날 주문을 받은 여성은 장 의원의 아내로, "평소엔 (장 의원이) 바빠서, 내가 거의 가게 일을 본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식당을 찾을 때 누구 돈을 쓰느냐'고 묻자, 그는 별 다른 말을 내놓지 않았다.
당적을 초월한 구의원들의 회합 장소답게, 제8대 해운대구의회 의장단(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은 2018년 7월 임기 시작부터 지난해까지 '언양봉계숯불갈비집'에서 50차례에 걸쳐 총 1,432만6,500원의 식대를 업무추진비로 결제했다. 구민들이 낸 세금이 지역구 기초의원의 겸직 사업장 매출 증대에 기여해온 셈이다. 이 중엔 2019년 6월 이명원 의장이 '의정활동 홍보를 위한 언론인과의 간담회 개최' 명목으로 언론인 등 24명과 회식하며 지출한 비용도 포함돼 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기초의원은 소관 상임위원회 직무와 관련된 영리행위를 하지 못한다. 장 의원은 제8대 해운대구의회 전반기 의장을 맡았고, 현재는 주민도시보건위원회에 속해 있다. 주민도시보건위원회는 구청 보건소 업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장 의원이 운영하는 식당도 상임위 활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운대구청은 2007년부터 장 의원 식당을 지역구 모범 식당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소속 의원의 겸직 문제를 감시해야 할 해운대구의회 측은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한국일보 통화에서 "지난해 업무추진비 문제가 도마에 올라 특정 식당 이용을 자제하려고 했고, 그 이후엔 장 의원 식당 방문을 많이 줄인 편"이라고 설명했다. 상임위 활동과 관련한 이해충돌 문제와 관련해선 "주민도시보건위원회가 식당 관련 상임위는 맞다"면서도 "행정안전부에서 자세한 가이드를 받지 못해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고 밝혔다.
기초의원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의장단 업무추진비를 사용하는 것은 일부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전국 기초의회 226곳의 2018~2021년 업무추진비 집행내역과 겸직 신고한 기초의원 1,336명의 겸직처를 비교 분석한 결과, 21개 기초의회 의장단의 업무추진비가 소속 의원의 겸직 사업장에서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21개 의장단은 3년 6개월간 총 362회에 걸쳐 동료 의원이 운영 중인 식당 등에서 7,054만 원을 사용했다.
서울 강북구의회 의장단은 허광행(44∙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로 있는 한식당 '고향산천'을 3년 반 동안 84차례 드나들며 1,602만7,500원을 지출했다. 이 중 사용 금액의 3분의1 정도는 이백균 전반기 의장이 썼다. 이 의장은 2018년 11월 5일부터 2020년 6월까지 22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 531만 5,000원을 허 의원 식당에서 사용했다. 의원들 업무 협의부터 사무국 직원 격려까지 사용 목적은 다양했다.
허 의원은 2018년 구의원으로 당선된 뒤 2010년부터 고향산천 대표로 일하며 월 500만 원을 벌고 있다는 내용의 겸직 신고서를 이미 이 의장에게 제출했다. 즉, 이백균 의장은 허 의원이 고향산천 대표라는 사실을 알고도 동료 의원과 의회 사무국 직원들을 데리고 자주 식당을 방문한 셈이다.
2020년 7월부터 후반기 의장을 맡은 이용균(더불어민주당) 의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의장은 후반기 임기 시작부터 2021년 12월 7일까지 18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 210만3,000원을 이곳에서 결제했다.
허 의원의 식당은 강북구의회 상임위원장들의 단골 회식 장소이기도 했다. 최치효 전반기 운영위원장은 위원장 임기 중 9차례에 걸쳐 업무추진비 206만2,500원을 결제했다. 서승목 전반기 행정보건위원장은 위원장 31차례에 걸쳐 614만3,000원을 결제했고, 후반기 위원장을 맡은 김영준 의원은 4차례 식당을 들러 40만4,000원을 썼다.
제8대 강북구의회 의장단이 2018~2021년 지출한 업무추진비는 모두 3억3,479만4,818원이었다. 이 중 5%가량이 허 의원이 운영하는 식당 한 곳에서 사용된 셈이다.
이용균 의장은 동료 의원 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자주 사용한 것과 관련해 "(본인이 의장으로 재임 중인) 의회 후반기에 해당 식당에서 의장단 업무추진비의 2.1%를 사용했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능한 여러 음식점을 이용해왔으며, 최소한으로 업무추진비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료 의원이 운영 중인 식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용을 배제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의견도 내놨다. 식당 운영 당사자인 허 의원과 이백균 전반기 의장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고향산천과 언양봉계숯불갈비 이외에 의장단 업무추진비가 20차례 이상 500만 원 넘게 사용된 '의원님 사업장'은 다수 존재했다. △황재용 경북 문경시의원(55∙국민의힘)의 '옛날영양돌솥밥'(37회, 652만5,000원) △손병화 서울 송파구의원(54∙국민의힘)의 '송파나루'(28회, 543만 원) △양평호 서울 강동구의원(68∙더불어민주당)의 '양도령숯불민물장어'(21회, 537만9,000원) 등으로 해당 사업장은 모두 식당이었다.
동료 의원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의원들 선물 구입 명목으로 의장단 업무추진비를 쓴 사례도 있었다. 진주시의회 전반기 의장을 맡았던 박성도 의원은 2019년 1월 29일 진주시 '행복식자재마트'에서 설 명절 격려품 구입 명목으로 60만 원을 결제했다. 진주시의원 20명 몫의 과일세트 20박스를 구입한 것이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해당 마트는 백승흥(60∙국민의힘) 진주시의원이 운영 중인 사업장으로 의회에 겸직 신고된 곳이었다.
올해 5월 19일부터 시행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르면, '이해충돌'이란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할 때 사적 이해관계가 관련돼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 저해되거나 저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을 뜻한다. 의장단이 소속 의원의 식당에서 업무추진비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행태는 해당 의원의 이해관계가 투영된 사업장에 시민 세금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충돌 소지가 다분하다.
일부 의원들은 사업장 매출에 큰 보탬이 되지 않는 이상 업무추진비 사용을 크게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에선 그러나 "그런 생각이야말로 공적 의식 결여에서 비롯된 안일함"이라고 지적한다. 양미숙 참여연대 부산 사무처장은 "의원 겸직 사업장에 업무추진비를 쓰는 것은 조례나 법령 준수 여부를 떠나 기본적인 공적 의식의 문제"라며 "사비를 쓰지 않고 세금을 써놓고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기초의회 의장단의 업무추진비가 언제든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시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부터 기초의회 경비는 의회 예산 증감에 연동되는 '총액한도제'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의장단 업무추진비도 경비 총액을 기준으로 상한 없이 책정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의장단에게 주어지는 예산과 의회 내 막강한 권한을 고려했을 때, 업무추진비 관련 이해충돌 문제는 더 엄격히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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