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후보단일화 압박을 받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서로에게 '공'을 던지며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 "단일화를 배제하지 않는다"(윤 후보) "제안이 온다면 생각해보겠다"(안 후보)며 단일화 자체를 부인하진 않지만, 서두르지도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시간은 내 편"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10일 윤 후보에게 단일화 책임을 떠넘겼다. 이날 보도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단일화가 안 돼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은 큰 정당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안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이 안 후보의 후보 사퇴 후 단일화를 요구하는 데 대해 "한국 정치사상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안 후보는 이번에도 조금의 여지를 두었다. 윤 후보의 '우리 둘이 10분 만에 단일화를 결정할 수 있다'는 최근 발언에 대해 "의사 타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한 말"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전 제안이 있다면 논의해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윤 후보가 7일 보도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단일화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두 사람은 이처럼 '밀당'만 하고 있다. "단일화를 배제할 필요 없다"(윤 후보) → "공개 발언은 진정성이 없다"(안 후보) → "10분 안에 가능하다"(윤 후보) → "10분 만에 할 수 있는 문제 아니다"(안 후보)라고 이어가는 식이다. 다만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에 '물밑 접촉'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10일로 대선일이 27일 남은 점을 고려하면,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지나치게 여유로운 편이다. 1997년 대선 때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은 선거 45일 전에 완성됐고,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정몽준 후보도 45일 전에 단일화 추진을 합의했다.
여유로움의 바탕에는 '시간은 내 편'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윤 후보 자신감의 원천은 지지율이다. 안 후보 지지율은 지난달 초 10%대 후반을 찍었지만, 이달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가 작용하는 만큼, 안 후보가 반등 포인트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국민의힘은 판단한다.
반면 안 후보 쪽은 윤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지지율 차이가 줄어드는 것에 주목한다. 윤 후보 역시 지지율 정체기를 맞았다. 한국리서치 등 4개 기관이 이달 7~9일 실시한 전국지표조사(NBS)의 대선후보 4명 가상대결에서 윤 후보와 이 후보의 지지율은 35%로 같았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더라도, 양강의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으면 단일화가 급한 쪽은 윤 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
후보 단일화를 서둘러야 할 현실적인 제약도 크지 않다. 일각에선 투표 용지 기표란에 '후보 사퇴'를 표기해야 한다는 이유로 투표 용지 인쇄일(이달 28일)을 단일화 데드라인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는 "그건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아 단일화 여부도 알지 못한 채 투표장에 들어가는 유권자가 있을 때 얘기"라며 "지금은 선거 직전에 단일화가 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거 비용 때문에 안 후보가 단일화를 서두를 것이란 예측도 있었지만, 안 후보는 이를 일축했다. 그는 10일 "포털 광고 계약, 유세차 계약을 다 했다"며 "네이버와는 20억 원짜리 계약을 마쳤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유세 비중이 높아진 만큼 막대한 비용 지출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여유를 부리는 사이 보수 진영에선 단일화 요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강창희·김형오·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포함한 전직 국회의원 191명은 이날 성명서를 발표하고 "각자의 길을 멈추고 국민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며 단일화를 촉구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NBS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