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가 법무부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기록물 훼손 및 반출 의혹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모든 공적 기록물을 보존하도록 한 ‘대통령기록물법(PRA)’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다. 지난해 1월 폭도들의 국회 의회당 난입을 방조ㆍ조장했다는 의혹으로 내란선동 혐의를 받을 수 있는 그에게 다른 혐의가 추가되는 셈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9일(현지시간) 소식통 2명을 인용해 NARA가 법무부에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기록 취급에 대해 조사할 것을 요청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 조사에 대한 논의가 촉발됐다고 전했다. NARA의 요청은 최근 미국 대법원의 열람 허가로 지난해 1월 6일 발생한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 사태와 관련한 백악관 문건들에서 일부 문서들이 찢긴 후 다시 붙여진 흔적이 나타난 데 따른 것이다. WP는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받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포함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서한 등을 빼돌렸다고 보도했다. NARA는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부터 친서 등이 포함된 서류 상자 15개를 회수하고, 그가 기록물을 더 빼돌렸는지 파악 중이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 건으로 사법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딕 더빈 상원 법사위원장은 전날 CNN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을 위반했지만 (PRA가) 대통령에게 적용된 적은 지금까지 없다”고 말했다. WP 역시 법무부가 실제 수사에 착수할지는 확실하지 않고, 기밀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는 선에서 끝날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전 대통령을 기소하려면 중요한 기록물을 은폐할 의도가 있었거나 기록물을 매우 소홀히 취급했음을 입증해야 하지만 쉽지 않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법무부가 해당 의혹에 대한 질의에 즉각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되레 언론을 향해 불쾌감을 내비쳤다. WP에 따르면, 그는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NARA와 공조하고 있다면서 “언론이 나와 NARA의 관계를 적대적이라고 잘못 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자료의 대부분은 언젠가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 도서관’에 전시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의 놀라운 성과를 대중들이 보게 될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기소여부를 떠나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기류는 심상치 않다. 하원 1ㆍ6 조사위원회가 피터 나바로 전 백악관 무역ㆍ제조업정책국장을 다음 달 2일 증인으로 소환하기로 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옥죄는 모습이다. 조사위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사당 난입사태 관여 의혹을 정조준한 것이라는 평가다. 나바로 전 국장은 의회 폭동에 대한 트럼프 전 대통령 측 움직임을 상세히 알고 있는 인물이다.
우군이었던 공화당에서도 파열음이 들린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전날 공화당전국위원회(RNC)가 하원 조사위에 참여하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을 비판하자 “의회 난입은 폭력적인 반란”이라고 일침을 놨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도 지난 4일 한 행사에서 지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했던 트럼프가 틀렸다면서 "나는 선거를 뒤집을 권한이 없었다"고 직격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매코널 대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사기적인 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