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인 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방역 빗장을 풀고 있다. 확진자 격리 규정을 없애고, 일부에 한해서만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시행하는 등 사실상 방역 규제를 전면 해제하는 수순이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 전환을 예고한 셈인데, 전문가들은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9일(현지시간) 하원에서 내달 24일로 예정된 코로나19 방역 조치(플랜A) 종료 시기를 이달 말로 한 달 앞당길 예정이라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지금의 고무적인 추세가 계속된다면 자가격리 법적 의무를 포함해 나머지 방역 조치를 미리 해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앞서 지난달 26일 실내 마스크 착용, 재택근무 권고, 상업시설 백신패스 의무 등이 포함된 방역 조치 ‘플랜B’를 종료하고, 플랜A를 시행 중이다. 확진자 자가격리, 학교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 등 플랜B보다 완화된 조치인데, 존슨 총리는 이마저도 해제하겠다는 얘기다. 영국 보건당국은 코로나19 검사센터를 축소하고, 무료 신속검사를 학교나 병원 등 필수 인력들에게만 허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보다 완화된 방역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스웨덴도 이날부터 모든 감염자 대상 PCR검사 의무를 해제하고, 보건 분야 종사자와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 한해서만 무료 검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해당 계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코로나19 감염 의심 환자들은 집에서 자가 항원 검사를 통해 확진 여부를 파악해야 한다. 검사 결과를 당국에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 스웨덴 보건당국은 “코로나19 검사로 주당 5억 크로나(약 657억 원)의 비용이 소요됐다”며 “비용과 검사의 적절성이 더는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상업시설 영업시간 제한을 없애고, 백신패스 의무 사용도 폐지했다.
독일과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방역 빗장 풀기 대열에 동참할 계획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오는 16일 회의를 열어 백신패스 해제 등의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지난 2일부터 야외 마스크 의무화 해제 등 이미 방역 조치를 단계적으로 풀고 있는 프랑스도 다음 달부터는 식당, 카페, 대중교통 등에서의 백신패스를 폐지할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섣부른 방역 조치 완화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폴 헌터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의대 교수는 “오미크론 변이 하위(스텔스 오미크론) 사례가 늘어나는 상황을 감안하면 방역 조치 완화는 너무 이른 도박”이라고 말했다. 프레드릭 엘기 스웨덴 우메오대 교수도 “코로나19 자가 검사로는 정확한 감염자 수를 파악하기 힘들다”며 “방역 조치를 풀기에는 아직 상황이 위험하며 좀 더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우려했다.
영국과 독일 등에서는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6만~7만 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앞서 방역 조치 대부분을 해제한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에서도 여전히 2만~5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