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역시 드라마...역경 딛고 일어선 동계 영웅들

입력
2022.02.10 17:18
빅에어 경기선 1위 노르웨이 2위 미국 선수
각각 부모 잃은 아픔·부상 딛고 날아올라

올림픽의 백미는 단연 선수들이 써내려가는 드라마다. 편파적 판정 논란으로 실망도 잠시, 한국 남자 쇼트트랙 간판 황대헌(22)은 '강철 멘털'을 유지하며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황대헌은 쟁쟁한 선수들 가운데서 선두로 달려나가며 나란히 결선에 오른 한국 대표팀 이준서(22), 박장혁(23)을 이끌었다. 지난 1,000m 경기에서 왼손 부상을 입은 박장혁도 아픔을 잊은 듯한 모습으로 얼음 위를 달렸다.

이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선 얼음 위, 설원 위에서 역경을 딛고 달리는 동계 영웅들을 만날 수 있다. 남 모를 아픔으로 선수 생활을 포기할 뻔 했지만 경기장을 잊지 못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베이징에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메달을 따내지 못해도 최선을 다한 모습으로 박수를 받기도 한다.

9일 중국 베이징 서우강 빅에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프리스타일 스키 빅에어 결승전에선 노르웨이의 비르크 루드(21)가 1위, 미국의 콜비 스티븐슨(24)이 2위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루드는 올림픽 첫 출전에 빅에어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게 됐다.

두 선수는 지난 역경을 딛고 날아오르며 멋진 연기를 펼쳤다. 루드는 지난해 스키 월드컵에 참가할 당시 아버지를 암으로 잃어 대회를 중도 포기했다. 올림픽을 두 달 앞두곤 무릎 부상으로 베이징 진출이 좌절될 뻔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는 대신 딛고 일어났다.

2차 시기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마친 루드는 금메달을 확정 짓자 3차 시기에서 한 손에 노르웨이 국기를 들고 날아오르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후 기쁨에 찬 표정으로 초대 챔피언이 된 기분을 누렸다. 루드는 경기를 마치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에 감사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최종합계 183점으로 2위에 오른 스티븐슨은 2016년 교통사고로 두개골에 골절을 입었다. 당시 3일 동안 혼수 상태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큰 수술을 요했던 상황에서 조금씩 회복해 최고의 스키 선수로 돌아왔다. 스티븐슨은 미국에 값진 빅에어 은메달을 선사하며 기적이 있음을 증명했다. 그는 경기를 마치고 "내가 지금 시상대에 올라와있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며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두 선수가 각각 금·은메달을 따낸 프리스타일 빅에어는 점프대를 도약하며 공중 묘기를 펼치는 종목으로 이번 올림픽에서 첫선을 보였다. 여자 빅에어 경기에선 미국계 중국인 '스키 스타' 에일린 구(19)가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남자 빅에어 동메달은 최종합계 181점을 기록해 3위를 차지한 헨리크 하를라우트(스웨덴)에게 돌아갔다.

상위권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 박수를 받은 선수도 있다. 조지아의 루지 선수 사바 쿠마리타시빌리(21)는 2010년 벤쿠버 올림픽 직전 연습 주행에서 트랙을 이탈하는 사고로 세상을 떠난 노다르 쿠마리타시빌리의 사촌 동생이다. 사촌 형의 안타까운 사고 이후, 루지를 향한 열정을 버리지 못한 사바는 12년 후인 베이징 올림픽에서 노다르를 대신해 루지 경기에 도전했다.

지난 6일 중국 옌칭 국립슬라이딩센터에서 3차례 주행을 마치고 사바는 "긴장이 됐지만 내가 해야할 일을 했다"며 "지금은 내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전체 출전선수 35명 중 31위를 기록해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루지 경기장에서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달리는 모습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김소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