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동안 우리는 우리의 우주를 찾는다”

입력
2022.02.11 04:30
15면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
데이비드 빈센트 '낭만적 은둔의 역사'


“고독한 사람에게 오래된 담뱃대는 소중한 동반자다. 특별히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넉넉하면, 그는 자연스럽게 파이프를 채우고 안락의자를 벽난로 앞으로 가져간다. 그는 외로운 줄 모른다.”


최초로 흡연의 사회적 역사를 다룬 ‘대중관찰조사’(1941)는 흡연을 고독의 측면에서 조명한다. 담배의 소비가 의학적으로 ‘중독’으로 평가되기 전까지, 흡연은 “집단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수단”이었다. 불을 붙이면 재만 남는 이 행위는 “완전히 혼자 즐길 수 있는 도락”으로써 칭송됐다.

흡연뿐만 아니다. 인류는 지난 세기 동안 혼자 있는 시간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각종 취미를 개발해왔다. 1인 카드게임, 우표 수집, 자수와 같은 가정 여가활동에서부터 낚시와 원예 등의 활동이 “혼자서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완벽한 도구”로 사랑받았다.

특히 라디오, 텔레비전, 소니 워크맨 등의 등장은 ‘혼자 놀기’의 차원을 한 단계 확장시켰다. 예를 들어, 영화는 갑갑한 집을 탈출할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노동계층과 여성 관객의 비율이 높았는데, 많은 여성들이 단지 단독 노동에서 풀려나기 위해 화려한 극장까지 걸어갔다. 조명이 꺼지면 답답한 현실세계가 사라졌고, 프로젝터만 번뜩이는 암흑 속에서 모든 가정사와 갈등이 한동안 멈췄다. 느긋한 관람객은 영화 속 세계에 들어가든, 상상을 일으키든 혼자만의 풍경 속을 거닐든 선택할 수 있었다.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역사를 연구해온 데이비드 빈센트의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이처럼 오랫동안 혼자인 시간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법을 골몰해온 인류의 탐구를 집대성한 책이다. 약 400년 동안의 ‘혼자 있기’를 최초로 다룬 대중서로 역사, 사회경제, 심리, 종교, 문화를 종횡무진하며 ‘혼자의 역사’를 따라간다.

책은 앞선 시대 혼자라는 세계를 누볐던 선구자들이 남긴 글을 통해 고독을 통찰한다. 1580년 철학자 몽테뉴는 “다른 사람들한테 자기를 묶은 속박에서 느슨해질것"을 요청했고, 1820년 영국의 시인 존 클레어는 “앉아서 시냇물 거품을 바라보다 궁금해서 1시간을 허비해도 좋다네. 아 그대 위로를 주는 고독이여. 허영심 강한 이들로부터, 무례한 이들로부터”라고 고독을 예찬했다. 꼭 군중으로부터 고립되어야만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인도에 고립됐던 로빈슨 크루소는 속편에서 런던으로 돌아온 뒤 “외딴 섬에서 28년간 누린 것보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파에 섞여 이 글을 쓰면서 혼자임을 더 많이 누린다”고 말한다.


책은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으로써 ‘산책’을 자세히 다룬다. 19세기 도보는 고독을 경험하는 가장 평범한 수단이었다. 19세기 후반 도시 교통 체계가 발달하며 걸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됐고 주요 도시들을 드나드는 기차로 인해 도보는 여가 활동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도로망, 지도, 표지판, 안내서, 숙소 등이 확대되며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되면서 도보는 단독 여행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도보는 가족들과 섞여 지내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집을 피할 가장 간단한 수단이자 문학적 경험이기도 했다. 집단에서 분리되기 위해서는 돈, 시간, 실내 공간이 필요했는데 이를 가질 수 없었던 하류층에게 가장 쉬운 방편은 집 밖을 나서 산책하는 것이었다. 맹렬하고 빠르게 도심을 걸어 몇 시간에 20마일을 주파했을 정도로 걷는 데 열심이었던 찰스 디킨스는 도심 산책자로서 런던의 복잡한 사회경제적 구역들을 파악할 수 있었고 ‘두 도시 이야기’를 써냈다.


책은 고독과 자발적 은둔에 관한 다양한 철학적 사유를 아우르는 동시에 격리와 단독 감금, 구금되는 종교 명상과 같은 ‘강제적 고독’의 문제도 함께 살핀다. ‘외로움’과 ‘고독’의 경계에 대해서도 폭넓게 질문하며 어떻게 외로움이 현대사회에서 ‘병’으로 인식되게 됐는지 그 경위를 밝힌다. 이를 통해 외로움과 불평등 구조와의 연관성을 짚는다. 물론, “온갖 논의가 있어도” 고독은 결국 “자기 회복과 자유롭고자 하는 경향”이라던 1791년의 정의는 여전히 우리 시대에도 유효함을 덧붙인다. 코로나로 신체적 정신적 고립을 경험 중인 지금, 이 무한한 고독의 시간을 함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책이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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