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제왕’이 바뀌었다. 4년의 실수를 복기하며 장족의 발전을 이룬 네이선 첸(23·미국)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싱글 금메달을 차지했다. 올림픽 3연패 도전에 나섰던 하뉴 유즈루(28·일본)는 미지의 영역인 공중 4.5회전 신기술을 선보인 뒤 제왕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첸은 10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베이징 대회 피겨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121.41점, 예술점수(PCS) 97.22점으로 총점 218.63점을 획득했다. 첸은 앞서 8일 쇼트프로그램에서 하뉴가 보유했던 종전 남자 싱글 쇼트 세계기록(111.82점)을 넘어선 113.97점을 받았다.
첸은 이로써 남자 싱글 최종 총점 332.60점으로 가기야마 유마(일본·310.05점)를 제치고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첸은 “마지막 점프를 끝낸 뒤 금메달에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행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첸에게는 이번 금메달이 올림픽 무대 공포증을 극복한 결과여서 더욱 값지다. 2018 평창대회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싱글 5위에 그친 첸은 지난 4년간 정신·신체적으로 한층 강해졌다. 그는 미국 명문 예일대에 진학해 학업과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며 피겨 선수의 압박감에서 벗어났고 체력, 기술 등을 끌어올리며 기량을 전체적으로 향상시켰다. 장기인 4회전 점프를 쇼트에는 2번, 프리에는 5번 넣는 패턴을 만들어 프리(224.92점)와 총점(335.30점) 세계 최고점을 이뤄내 언론들은 베이징 대회를 앞두고 “새로운 피겨 챔피언이 탄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반면 하뉴는 이날 프리에서 TES 99.62점, PCS 90.44점에 감점 2점으로 총점 188.06점을 기록했다. 8일 쇼트에서 얻은 95.15점을 더해 최종 총점 283.21점으로 4위에 머물렀다. 2014 소치와 2018 평창대회에서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건 하뉴는 처음으로 올림픽 노메달에 그쳤다.
하뉴는 8일 쇼트에서 스케이트 날이 얼음에 걸려 점프를 뛰지 못한 실수를 저지르며 사실상 올림픽 메달은 멀어졌다. 스웨덴 일리스 그라프스트룀(1920·1924·1928년)에 이은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3연패를 위해선 국제대회에서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는 공중에서 4.5바퀴를 회전하는 쿼드러플 악셀이 절실했다. 인간이 극복하기에 불가능하다는 평을 받는 기술이다. 하뉴는 “아직 한 번 더 기회가 있다. 프리에서 점프가 많다”며 공개훈련에서 시도하며 역전을 노렸다.
하뉴는 실제 이날 경기 시작 후 첫 점프 과제부터 쿼드러플 악셀을 꺼내들었다. 높은 도약을 이루며 4.5회전을 기어이 성공했지만, 착지 과정에서 쓰러지며 언더로테이티드(회전이 90도 이상 180도 이하 부족) 판정을 받았고, 감점 1점도 얻었다. 당황한 하뉴는 이어진 점프인 쿼드러플 살코를 시도하다 넘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하뉴는 피겨 제왕답게 금세 제 기량을 찾았고, 스핀과 스텝 시퀀스, 코리오 시퀀스를 끝으로 경기를 마친 뒤 미소로 응원한 관중에게 화답했다. 하뉴는 두 손으로 빙판을 만지며 베이징 대회와 작별했고, 관중들은 불가능에 도전한 영웅에게 박수를 보냈다. 하뉴는 “전부 쏟아냈다. 실수 또한 내 모습”이라며 “다음 올림픽 출전 여부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만큼 이번 올림픽에 내 모든 것을 쏟아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