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으로 도난당한 5조 원대 비트코인을 다른 전자지갑으로 옮겨 세탁하려던 미국의 30대 부부가 붙잡혔다. 그동안 추적이 어려워 자금세탁 등 각종 범죄에 악용돼 온 가상화폐가 더 이상 범죄자들의 안전한 은닉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9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뉴욕에서 11만9,754개의 비트코인을 세탁하기 위해 공모한 혐의로 일리야 릭턴스타인(34)과 그의 아내 헤더 모건(31)을 체포해 기소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이들로부터 36억 달러(약 4조3,000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 9만4,000여 개를 압류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법무부가 압수한 역대 최대액이다.
이들이 세탁하려 한 비트코인은 지난 2016년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중 한 곳인 '비트파이넥스'에서 해킹으로 도난당한 것이다. 당시 피해액은 7,100만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서 현재 가치는 45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직접 해킹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법무부에 따르면, 당시 비트파이넥스를 해킹한 해커는 훔친 비트코인을 2,000여 건의 거래를 통해 11만9,000여 개의 비트코인을 세탁한 후 릭턴스타인이 관리하는 디지털 지갑으로 보냈다. 부부는 이 가운데 2만5,000여 개의 비트코인은 허위 신분으로 가상계좌를 만들어 폐쇄형 네트워크인 '다크넷' 등을 통해 직접 현금화했다. 나머지 9만4,000여 개의 비트코인은 다른 디지털 지갑에 보관해두고 있었다.
릭턴스타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을 스타트업 고문, 투자자라고 소개했고, 모건은 래퍼, 기업가 등으로 신분을 속였다. 이들은 세탁한 자금으로 금, 대체불가토큰(NFT) 등을 구매하는 데 썼다. 또 월마트 기프트카드를 사고, 승차공유서비스 우버 등에서 결제했다.
법무부는 해당 비트코인이 새로운 디지털 지갑으로 옮겨지는 과정을 추적하던 중 이들 부부의 거래행위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사 모나코 법무부 차관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사건은 암호화폐가 더 이상 범죄자들의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는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대 20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