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뽑는데 MBTI를 꼭 봐야 하나요"... 채용 공고 두고 시끌시끌

입력
2022.02.19 12:00
채용 공고문에 지원 자격으로 MBTI 등장해 논란
특정 유형의 지원자 대상으로 "지원 불가"까지 
채용 과정에서 MBTI 결과 요구하기도
전문가 "개인 성향일 뿐 역량과 구분해야" 우려


ENTJ, ESFJ 분들은 지원 불가입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카페 직원을 뽑는 공고문을 캡처한 게시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사진 속 지원 자격에는 "저희는 MBTI를 보고 뽑아요"라며 ENTJ를 비롯한 5개의 유형은 지원 불가라고 적혀 있었다. 글 작성자는 "진짜 기겁함... 저런 사람이 있구나"라며 경악했다. 누리꾼들은 "MBTI 과몰입", "혈액형 보고 때려 맞추는 거랑 뭐가 달라..."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MBTI 퍼지기 전부터 알바 공고에 싹싹하고 밝은 사람 뽑는다 이런 말 많던데 그걸 MBTI로 표현한 것일 뿐"이라며 옹호하는 반응도 등장했다.


채용 시장에까지 나타난 MBTI는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얻었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란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로 1944년에 개발됐다. 검사자를 내향(I)·외향(E), 직관(N)·감각(S), 감정(F)·사고(T), 인식(P)·판단(J) 4가지 분류 기준에 따라 16가지 심리 유형 중 하나로 분류한다.

그런 MBTI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30 사이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 상대의 MBTI를 묻거나 추측하는 일이 흔해졌다. 유튜브에서 "ENTP모음", "INFP 모여라" 등 특정 유형을 설명해놓는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고, MBTI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도 여럿 생겼다. 'ISFP 플레이리스트', 'ENTJ 플레이리스트'처럼 유형 맞춤 음악모음집도 인기다. 연애 상대를 매칭하는데 MBTI를 고려하는 소개팅 앱도 생겼으며 한 여행사에서는 MBTI 유형별로 여행지를 추천한다. 취업준비생을 위한 한 소셜미디어에서는 MBTI 유형별 소득 순위를 공개하기도 했다.


"MBTI를 모르면 지원도 어렵나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을 보면 채용과정에서 MBTI 결과지나 MBTI 유형을 바탕으로 쓴 자기소개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회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특정 유형의 지원을 독려하거나 우대사항에 적어놓은 회사도 있었다.

최근 회사 마케팅팀 직원을 뽑는데 MBTI 유형을 요구한 생물·환경 전문기업 A사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요즘 대세"라며 "(우리 회사에) 노무 컨설팅을 해주는 업체에서 요즘은 이런 것도 하고 있다며 추천해 줬다"고 덧붙였다.

지난해부터 MBTI를 활용하고 있는 이 회사는 채용 면접 전에 지원자의 MBTI 검사 결과지를 받는다. 채용 사이트에 무료 검사가 가능한 링크를 첨부해놓기도 했다. 입사 지원자는 검사 후 결과 화면을 캡처해 회사에 제출해야 한다.

회사 관계자는 MBTI를 적용한 이후 "채용 면접에서 지원자의 성향과 업무 역량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또 채용에서 "(지원자의)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만 봤을 때 부족했다고 느껴졌던 부분을 보충하는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예 입사 지원 서류에 MBTI 유형을 반드시 써야 하는 회사도 있었다. 교육용 콘텐츠를 만드는 B사는 채용 공고에 '자기소개서에 MBTI 유형 기재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최적화된 직무 배치를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새로 뽑는 사람을 어느 업무에 배치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지 분석하고 채용해야 한다"며 "내성적인 사람한테 고객 CS(고객서비스)를 시키면 그 사람이 소통을 잘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개인의 성향일 뿐 역량과 달라

전문가들은 MBTI를 채용 과정에 활용하는 것 자체를 걱정했다.

기업의 조직 문화, 인사 평가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교육 컨설팅회사 컬쳐트리의 김명희 대표는 "채용할 때 넌 이런 성격이니까 우리랑 안 맞아라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라며 "(MBTI는) 개인의 성향일 뿐 역량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사람을 (MBTI로) 규정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내향적 사람도 필요 할 때면 얼마든지 열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며 강조했다. 그는 "사람은 누구랑 같이 있느냐에 따라 변할 수 있다"라며 "좋아하는 상사가 있으면 상사에게 맞추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맞출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사람이 가진 공감 능력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많은 미국 기업들은 MBTI를 채용 과정이 아니라 리더십 워크숍이나 팀 워크숍 등에서 쓴다"며 "같은 조직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알아가는 여러 도구 중 하나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MBTI 공식재단에서도 윤리 가이드라인을 통해 "성격 유형 정보만을 근거로 하여 특정한 진로, 인간관계, 활동 등을 택하거나 지양하도록 조언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취업지원관은 "MBTI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공부해 남을 잘 알고자 하는데 쓰이는 것으로 안다"며 "특정 유형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MBTI를) 잘못 이해한 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회사에서 입사 지원자가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는지 참고용으로 활용은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회사에서 특정 유형은 안 된다고 채용 공고에 밝힐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현 인턴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