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잠행' 모드 김정은... 대외 메시지는 '침묵', 경제 실정은 '남 탓'

입력
2022.02.09 00:10
6, 7일 최고인민회의 개최... 예산안 확정
"경제난 대응 미흡"... 내각 간부들 '반성문"

“일군(간부)들의 각오가 부족해 일부 단위가 예산 수입 계획에 미달했습니다.”

6, 7일 최고인민회의가 열린 평양 만수대의사당에 모인 북한의 고위 간부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내각을 이끄는 김덕훈 총리. “지난해 내각 사업에서 신중한 결함이 나타났다”고 고백한 그는 “당에서 아무리 정확한 경제정책을 제시하고 믿음과 권한을 부여해줘도, 일군들이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진보도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고정범 재정상과 양승호ㆍ김광남ㆍ김창건 대의원(남측의 국회의원 격) 등도 차례로 일어나 “각오가 부족했다” “업무태도가 피동적이었다”고 반성했다.

경제 관료들이 줄줄이 ‘공개 반성문’을 쓰는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회의에선 한미를 향한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혈맹 중국의 동계올림픽을 경제 실정의 책임을 관료들에 떠넘기는 ‘기강 확립’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8일 노동신문은 6일부터 이틀간 최고인민회의가 열렸다고 전했다. 남측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최고 주권기관이다. 회의는 철저히 ‘대내용’으로 진행됐다. 내각 사업보고와 국가예산집행 결산 및 의결, 법안 채택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 과정에서 각종 제재와 봉쇄 장기화로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경제 사정에 대한 지적이 잇따랐다. 관건은 경제난 악화의 책임 주체를 어디에 두느냐였다. 지난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한 김 위원장은 등장하지 않았다. 최고지도자와 노동당이 아닌 ‘경제사령탑’인 내각이 과오를 뒤집어써야 한다는 신호였다.

대외 메시지는 전무했다. 1월 한 달을 무력시위로 보낸 만큼 어느 때보다도 김 위원장의 회의 참석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 그가 시정연설을 통해 어떤 방향성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잠행을 택해 중국의 스포츠 축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겠다는 의중을 드러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베이징 동계올림픽 성공을 축원한 만큼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메시지를 내지 않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는 등 교역 재개를 서두르고 있다. 고 재정상은 예산보고에서 선진적ㆍ인민적 방역체계로의 전환을 위해 “비상방역 관련 예산을 지난해보다 33.3% 증액했다”고 밝혔다. 예산 확대는 경제난 해결에 필요한 외부 물자 도입과도 관련이 깊다. 북한은 지난달 16일부터 일부 지역에서 중국과 화물열차 운송을 재개했고, 러시아와도 국경 개방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활한 물자 확보에 쓰일 국경지역 방역시설 확충 등 각종 설비를 갖추는 데 예산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김민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