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서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받았다면서 그중 일부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민스크 협정 강화’일 것으로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무력 충돌 위기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모습이다.
7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많은 아이디어와 제안들은 현실성 있다”며 “일부는 추가 조치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한 푸틴 대통령의 최근 발언 중 가장 전향적이다. 이날 회담은 무려 5시간 넘게 이어졌다.
마크롱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에게 구체적인 안전 보장안을 제안했다”며 “앞으로 며칠간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우리는 집중적 토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은 이러한 노력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돼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안정과 영토 보전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나에게 확신시켰다”고 강조했다. 또 “여전히 이견은 남아 있지만 푸틴 대통령과의 교집합 요인을 찾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다만 유럽의 새로운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나토 가입 권리를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상은 이어 8일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이후에 다시 한번 전화 통화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아이디어를 놓고 우크라이나와도 논의하면서 서로 타협점을 찾아가겠다는 얘기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간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고 유럽에 안정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치켜세웠다.
회담 직후 양 정상 간 구체적으로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외신들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가 핵심일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은 회담 전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가 푸틴 대통령에게 제안할 내용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중립국이다. 나토 동진(東進)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불만을 달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을 완화시키기 위한 의도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금지하는 확약을 서방 측에 요구하고 서방은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전쟁 위협이 고조돼 왔던 점을 감안하면 마크롱식 절충안은 매력적인 대안이라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마크롱 대통령은 민스크 협정을 통한 안보 위기 해결을 푸틴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이날 프랑스 관리들을 인용해 “마크롱 대통령이 푸틴에게 프랑스 독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을 통해 기존 민스크 협정을 강화하는 방식의 해결책을 제안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親)러시아 분리주의자들에게 우크라이나 정부 결정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우크라이나는 ‘엄정 중립’을 지킨다는 조건으로 러시아와 유럽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 핵심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 회담 직후 “민스크 협정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이행돼야 한다는 데 양국이 뜻을 같이했다”고 설명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양국 정상 회담으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쟁 위협이 해소될 단초가 마련된 듯하지만 갈 길은 멀다. 푸틴-마크롱 협상안이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미국을 포함한 나토 회원국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한 차례 회의에서 결정적 돌파구를 기대하기에는 현재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며 “실질적이고 장기간의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