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템포 늦고 '자기 이슈' 없는 이재명... 윤석열에 '마이크' 내줬다

입력
2022.02.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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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의 던지기→李의 대응' 반복
실점 적지만 득점도 적은 '소확행' 전략
"대통령다운 큰 그림 보여줘야"

#장면① 지난 주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사이에 '노무현 정신 계승' 경쟁이 벌어졌다. 시작은 윤 후보였다. 그는 5일 제주 강정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는 깜짝 발언을 했다. 이 후보의 6일 경남 봉하마을 참배를 하루 앞두고 선공을 한 것이다. 우상호 민주당 선거대책위 총괄선대본부장은 7일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가) 우리 전략에 물타기를 하는 것"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장면② 3일 대선후보 4자 TV토론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사드) 추가 배치였다. 논쟁의 방아쇠를 당긴 건 지난달 30일 "사드 추가 배치"라는 단문을 페이스북에 올린 윤 후보였다. 북한의 미사일 연쇄 도발 와중이라, 안보 강화론이 사드 무용론을 압도했다. 이 후보도 이슈를 뒤좇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 3일 "사드에 버금가는 장거리 요격미사일(L-SAM) 조기 개발"을 약속했다.

'소소한 공약'에 방점찍은 이재명..."핵심 의제가 안 보인다"

최근 대선 이슈가 생산·확장되는 구조가 딱 이렇다. 윤 후보가 논쟁적인 주제를 던지면, 이 후보가 시간차를 두고 대응하는 식이다.

윤 후보는 이슈 선점에 사활을 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외국인 건강보험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는 등 선을 넘는 지르기도 불사한다. 이 후보는 상대적으로 느리다. 윤 후보처럼 부적절한 도발을 하진 않지만, '이재명의 이슈'도 키우지 못하는 탓에 선거공론장의 주도권을 윤 후보에게 내줬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7일 "이 후보의 국정운영의 비전을 담은 핵심 의제가 여전히 보이지 않고, 방어적이고 수동적으로 이슈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생활밀착형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을 통해 행정가 출신의 디테일과 실천력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 후보는 7일 탐정자격증 공인제도를 도입하겠다는 65번째 소확행 공약을 발표했고, 경기도식 위기아동 발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16번째 '명확행(이재명의 확실한 행복)' 공약도 추가했다.

실점 최소화 전략, 유효할까

민주당이 '미니 공약' 중심의 선거 전략을 끌고 가는 것은 찬반이 갈리는 거대 담론이 유발하는 실점을 줄이기 위해서다. 정권교체론의 높은 파고 속에 지지층 결집이 급한 이 후보의 처지가 반영된 전략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선거를 앞두고 거대 담론을 지르면, 나가는 표도 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강훈식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도 "경제 잘하는 후보가 뒷심이 센 편"이라며 '일 잘하는 경제대통령'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제는 득점할 수 있는 '추격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선거 구도가 윤 후보에게 유리하게 짜인 상황에서 작은 공약만으로는 판을 뒤집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선대위의 한 인사는 "예컨대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얘기를 하면 동네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위해 다 찍어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대통령다운 큰 그림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홍인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