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일본이 12일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10일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하기로 했다. 3국 외교장관 및 북핵대표가 같은 시간ㆍ장소에서 ‘쌍끌이 만남’을 갖는 건 2019년 8월 태국 방콕 회담 이후 2년 6개월 만이다. 그만큼 북한의 연이은 도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공동 대응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뜻이다. 한반도 정세를 반전시킬 극적 결과를 도출하기는 힘들겠지만,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7일 외교부에 따르면 노규덕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ㆍ대양주국장과 북핵대표 협의를 할 예정이다. 이틀 뒤 열리는 3국 외교장관 회담에 앞선 실무급 협의다. 미 국무부가 북핵대표들이 장관 회담에도 배석한다고 예고한 점으로 미뤄 실무 협의 결과물이 장관 회담의 핵심 의제가 될 확률이 높다.
외교장관 회담 앞뒤로 북핵대표들이 만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 다만 두 주체의 논의가 연동돼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처럼 장관ㆍ북핵대표의 동일 장소, 동일 시점 회동은 2019년 8월 2일 방콕 회담이 마지막이었다. 특히 12일 장관 회담에는 북핵대표들도 동석해 북한 도발 등 한반도 이슈가 비중 있게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 재개 방안을 놓고 충분한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일정 조율 배경에는 ‘모라토리엄(유예)’ 파기를 협박한 북한의 도발 수위, ‘사도광산’ 변수로 더 얼어붙은 한일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방콕 회담 때도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고 북한이 ‘하노이 노딜’ 이후 잇단 미사일 발사에 나서는 등 상황이 비슷했다. 당시엔 한일 갈등 심화로 한미일의 굳건한 공조가 흐트러지며 북한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선 이번 연쇄 회동 역시 북한의 오판 가능성을 경계하는 차원으로 해석한다. 미국 입장에서도 한미일 공조를 다질 수 있는 만큼 손해 볼 건 없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은 한국이 민감해하는 대만 문제 외에 새로운 한미일 협력 의제를 찾으려 노력해왔다”면서 “양국 모두 높아진 북한 위기 지수에 공감하면서 관계 진전의 좋은 기회가 생겼다고 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합의 도출 여부는 미지수다. 한미일 외교수장과 핵심 실무진이 모두 모였어도 각자의 셈법이 다른 탓이다.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우선시하는 반면, 미국은 북한의 뒷배인 중국 대응 문제를 다루고 싶어한다. 일본은 ‘압박’ 기조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이 협의 일정을 공개하며 “넓은 범위의 이슈”를 의제에 올리겠다는 표현을 쓴 것도 대북 이슈만 콕 집어 논의하기보다 전반적인 한미일 공조 강화에 중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 문제는 들러리 역할만 하고 회담의 실질적 방향이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 등 보다 넓은 범위의 3국 협의에 치우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은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큰 틀의 공조 태세를 강조할 것”이라며 “구체적 정책 과제가 합의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