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주한 미 대사 지명은 한국 정권 교체 고려한 것”

입력
2022.02.07 16:14
“文 정부 종전선언 추진에 조용히 불쾌감 표시” 
“北 핵 포기 의사 보여야 긴장완화”… 대북 강경파 
“인도적 대북 지원, 제재 일부 해제 가능성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뒤늦은 주한 미 대사 지명은 한국의 정권 교체를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북한과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입장을 달리하는 바이든 정부가 문 대통령의 후임자가 정해지기를 기다렸다는 의미다.

동아시아 전문 언론인인 도널드 커크는 5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더힐에 기고한 ‘주한 미 대사에게 닥칠 힘겨운 도전’이란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1년 넘게 비어있던 주한 미 대사로 필립 골드버그 주콜럼비아 미 대사를 내정했다.

커크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해 1월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 대사가 임기를 마친 이후 미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와 국무부의 자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미 정부인사 누구도 주한 미 대사를 공석으로 방치한 이유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서울에선 미국이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 대통령의 후임자가 선거에서 정해지기를 기다렸다는 추정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려는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 바이든 행정부가 주한 미 대사 지명을 미루는 것으로 “조용히 불쾌감을 표시했다”고 커크는 풀이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3년 가까이 미국ㆍ한국과 대화를 거부한 끝에 최근 제재를 무시하고 미사일 시험발사를 거듭하고 있다. 또 2017년 이래 처음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나설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2017년 이후 중단해온 핵실험도 재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임할 골드버그 내정자는 한미 동맹을 튼튼히 하고, 북한이 핵 포기 의사를 보여야 대화와 긴장완화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일 것으로 예고된다. 그는 10여 년 전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보조사국 차관보 등을 지내며 북한의 핵ㆍ미사일 시험에 유엔 제재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대북 강경파로 꼽히는 인물이다.

골드버그의 가장 큰 임무는 2만8,500명 규모인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는 북한에 맞서 강력한 한미 군사동맹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커크는 주목했다. 2018년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이후 주로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해온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재개가 당면과제로 꼽힌다.

이와 함께 골드버그는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시들어버린 미ㆍ북 화해 노력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반도 비핵화를 철저히 추구하는 동시에,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춰 인도적 대북 지원은 물론 북한을 대화로 끌어들이기 위한 일부 제재 완화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커크는 진단했다. 커크는 “골드버그는 북한에 관한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한국의 대선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될지에 따라 신중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콜롬비아 주재 미 대사 이전 골드버그는 필리핀 주재 미 대사를 역임했다. 까다로운 정부들을 상대로 신중하고 치밀한 외교를 펼쳐온 노련한 외교관이란 평가를 받는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와 상원 전체회의 승인 절차를 거치면 한국에 차기 정부가 들어서는 5월께 부임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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