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비상대책 꺼내든 유럽, 러시아 없이 ‘에너지 독립’ 가능할까

입력
2022.02.0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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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에너지기업 가스프롬, 국가별 공급 계약
유럽 내 지역 에너지 회사 지분·가스 저장소 소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습 위험으로 에너지 안보 위기에 직면한 유럽이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과 에너지 가격 상승 억제 등 비상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유럽 내 천연가스 43%를 공급하는 러시아가 가스관을 잠그면, 에너지 대란을 피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러나 유럽이 손에 쥔 카드로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 사태를 상정한 비상계획을 마련해 다음 달 EU 정상회의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우선 LNG 확보를 위해 4일 아제르바이잔과 논의한 데 이어 7일에는 미국과 회담하고, 추후 나이지리아와도 협상 테이블을 차리기로 했다. 아울러 에너지 부족이 현실화할 경우 가스 가격과 전기 가격이 동반 상승하지 않도록 일시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가스관이 막히면 에너지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도 힘들어질 것”이라며 경고장을 날렸다.

하지만 EU의 자신감은 근거가 빈약하다. 가스관을 운영하는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이 수십 년간 EU 에너지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탓이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따르면 EU는 지난 10년간 유럽 가스 시장 통합을 추진해 왔지만, 가스프롬은 개별 국가들과 직접 공급 계약을 맺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래야 이익이 크고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헝가리는 가스프롬과 독점 공급 계약 대가로 가격 우대를 받았다. EU가 가스 비축량 확대와 공동 구매 방안 등을 추진하더라도 가스프롬이 각 나라에 특혜를 제공한다면 EU 차원의 공동 대응 전선은 무너질 공산이 크다.

또 가스프롬은 거의 모든 유럽 국가 내 지역 에너지업체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유럽에서 가장 큰, 독일 가스저장시설을 소유한 에너지회사 ‘아스트로’도 가스프롬 자회사다. 에너지 공급망 실핏줄과 핵심 저장소가 모두 러시아 영향력 아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가스관 차단이 러시아에 예상보다 큰 타격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유럽의 선택지를 좁히는 요인이다. 베이징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러시아는 매년 100억㎥ 규모 천연가스를 중국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심지어 미국도 주요 고객이다. 가스프롬은 원유도 생산 중인데, 2020년 미국이 수입한 원유의 8%가 러시아산으로,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았다. 경제 싱크탱크 ‘브뤼겔’ 에너지 전문가 게오르크 차흐만은 “EU가 가스프롬에 대항할 수 있는 방안은 많지 않다”며 “만약 가스관이 잠긴다면, 더 나쁜 협상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