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을 기다렸다…피겨 새 역사를 향한 차준환의 도전

입력
2022.02.0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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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검은색 연습복을 입은 채 아이 같은 얼굴로 훈련장에 들어선 차준환(21)은 처음에는 차근히 몸만 풀었다. 함께 온 선수들과 장난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영락없는 소년이었다. 흐름을 몸에 익히려는 듯 점프는 타이밍만 잡았다. 동작 하나마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그러다 10여 분이 지나고 자신의 쇼트프로그램 음악 '이터널 이클립스'의 '더 페이트 오브 클락메이커'(시계공의 운명)가 흘러나오자 차준환의 리듬도 돌변했다. 역동적인 첼로 솔로를 타고 4회전(쿼드러플 살코)을 날아오르더니, 트리플 러츠에 트리플 루프 콤비네이션까지 가볍게 해냈다. 스텝과 스핀에도 완급이 살아 있었다. 미소년 느낌의 차준환과 대비되면서도 절묘하게 어울리는 에너지 넘치는 연기였다. 순식간에 링크장을 압도했다. 오서 코치는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취재진을 안내하던 중국 자원봉사자도 눈을 떼지 못했다.

이번 쇼트프로그램의 선곡은 팬들이 해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와 더 잘 어울렸다. 차준환은 6일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 인근 피겨스케이팅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팬들께서 만들어준 메시지북에서 듣고 너무 좋아 이 음악을 고르게 됐다. 쇼트프로그램에 쓰기에 너무 짦아서 믹스매치할 곡을 찾다가 지금의 쇼트 곡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훈련 중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본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늘 다른 날보다 좀 더 에너지 있게 타려고 했는데 발이 꼬인 것 같다. 조금 나온 실수여서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 부분에 좀 더 신경 써서 퀄리티 있게 소화해가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차준환은 국내 남자 피겨의 원톱이다. 어린 시절 초코파이 등의 광고 모델로 활동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집 근처 아이스링크에서 피겨 특강을 듣게 되면서 피겨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릴 적부터 연기나 무용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여성의 섬세함도 갖췄다.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남자 피겨 역대 최고 순위인 15위에 올랐다. 이번에는 더 높은 곳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연아를 지도하기도 했던 오서 코치는 올림픽을 앞둔 차준환에 대해 “메달도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6위권 정도 성적을 거뒀으면 한다”고 평가했다.

실제 차준환의 연기는 베이징 입성 이후 안정감과 완숙미를 더해 가고 있다. 차준환은 이 쇼트프로그램으로 출전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개인 공인 최고점인 273.22점으로 우승했다. 일본의 하뉴 유즈루와 미국의 네이선 첸 등 베이징 대회 우승 후보들이 참석하지 않았지만, 차준환이 이미 세계 정상급에 올라왔음을 확인시켜 준 무대였다.

차준환은 "오서 코치님이 6위권 말씀을 하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바라보는 게 선수로서 목표"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지금 당장은 경기 수행에 집중하고 싶다. 좋은 수행을 하면 그만큼 좋은 순위와 결과가 따라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좀 더 과정에 집중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시는 만큼 저 또한 좋은 경기로 보답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차준환은 7일 오서 코치와 오랜 기간 함께 훈련을 받아 왔던 하뉴와 같은 시간대에 훈련을 진행했다. 하뉴의 첫 올림픽 훈련에 많은 취재진이 몰렸지만 차준환은 차분한 모습으로 자신의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은 8일 오전 10시 15분부터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다. 차준환은 30명 가운데 23번째로 연기한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 하뉴는 21번째, 첸은 28번째로 경기한다. 한국의 이시형은 7번째다.

베이징 최동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