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분의 1초까지 다투는 빙상 종목에서 빙질 적응은 선수들에게 최우선 과제다. 얼음이 고르지 않거나, 정빙을 할 때마다 빙질이 달라진다면 경기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빙상 선수들에게 ‘얼음 주의보’가 내려졌다. 베이징의 좋지 않은 빙질 탓에 넘어지는 선수들이 속출하면서 빙질 적응이 메달 획득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최민정(24) 이유빈(21) 황대헌(23) 박장혁(24)이 팀을 이룬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지난 5일 중국 베이징의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베이징올림픽 혼성계주 준준결승에서 조 3위에 그쳤다.
매끄럽지 못한 빙질이 한국의 발목을 잡았다. 두 번째 레이스를 펼치던 박장혁이 경기 도중 껄끄러운 얼음에 걸려 넘어지며 예선 탈락이라는 쓴잔을 들었다.
전통의 쇼트트랙 강국 한국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신설된 혼성계주에서 메달을 노렸다. 남녀부 에이스 황대헌과 최민정이 모두 출전하면서 메달권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좋지 않은 빙질을 극복하지 못하며 쓰라린 결과를 맞이하게 됐다.
넘어지는 일은 실전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앞서 대회 개막 전 훈련을 하던 이유빈이 한 차례 넘어지기도 했다.
외국 선수들도 고전하긴 마찬가지다. 한국이 탈락한 뒤 열린 준결승에서는 500m 세계랭킹 1위인 수잔 슐팅(네덜란드)이 레이스 도중 넘어지면서 또 다른 빙상 강국 네덜란드도 탈락을 피하지 못했다. 혼성계주가 열리기 전 펼쳐진 여자 500m 예선과 남자 1,000m 예선에서도 넘어지는 선수가 속출했다.
남녀 쇼트트랙 경기가 열리는 베이징 캐피털 인도어 스타디움의 빙질은 다소 딱딱한 상태로, 정빙에 따라 조금씩 빙질이 바뀌면서 적응이 까다로운 것으로 전해진다. 올림픽 개막에 앞서 황대헌은 “빙질의 성질이 계속 변한다. 어제는 스케이트에 날이 잘 붙었는데, 오늘은 그립감이 없었다"며 빙질 적응이 메달 색깔을 가를 것으로 내다봤다.
메달 획득에 도전하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도 사정은 비슷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 은메달리스트 김보름(29)과 단거리 기대주 김현영(28)이 중국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공식 훈련 중 넘어지는 불안한 상황이 발생했다.
두 선수 모두 다행히 경기 출전에는 이상이 없다. 김보름은 "훈련 때 넘어지는 일은 거의 없는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베이징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얼음과 스케이트가 잘 달라붙어 빠른 속도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은 생소한 환경에 적응하다가 속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진 것으로 보인다.
쇼트트랙 혼성계주에서 첫 메달을 놓친 한국은 앞으로도 빙질 적응이 메달 획득 여부를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