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감염 증상의 하나가 냄새를 제대로 맡지 못하는 후각 기능 상실이다. 대부분 며칠 지나면 후각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12%의 환자는 그렇지 못하고 후각 감퇴(hyposmia)나 이상 후각(parosmiaㆍ냄새가 없는데 냄새난다고 느끼는 증상)을 보인다.
뉴욕대 그로스먼 의대(NYU Grossman School of Medicine)와 컬럼비아대 공동 연구팀이 코로나19 환자에게서 후각 이상이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지난 2일(현지 시간) ‘셀(Cell)’ 온라인판에 게재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에 감염되면 코의 신경 세포 표면에 있는 단백질인 후각 수용체(OR) 활동이 줄어든다. 후각 수용체는 냄새 분자를 감지하는 콧속 신경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단백질이다.
후각 조직의 신경세포(뉴런) 주변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T세포 같은 면역세포가 몰려든다. 이들 면역세포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한다. 이로 인해 후각 뉴런의 유전자 활성도가 바뀐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후각 조직의 뉴런을 감염하지 않아도 나타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후각 조직의 뉴런에 접근하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 면역세포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면역세포는 대개 뇌에서 오랫동안 작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연구로 면역세포가 분비하는 신호전달물질은 후각 수용체를 만드는데 필요한 유전자 활성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계속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연구팀은 부검으로 채취한 환자 23명의 후각 조직과 골든 햄스터를 모델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분자 수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았다. 햄스터는 인간보다 후각에 더 많이 의존하고 비강 감염에는 더 취약한 포유동물이다.
그 결과, 코로나19 환자 상당수가 후각 감퇴와 이상 후각 등이 장기간 나타나는 이유가 드러났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침입하고 이에 맞서는 면역 반응이 나타나면 후각 수용체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염색체의 DNA 사슬이 활발히 개방되지 못해 유전자 발현을 자극하는 능력이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양쪽 모델 모두에서 후각 수용체 형성이 계속 진행돼 하향 조절됐다.
햄스터는 이런 현상이 짧게 나타났다가 원래대로 돌아갔지만, 인간의 후각 조직은 그렇지 못했다. 이는 코로나19 환자의 경우 염색체의 유전자 발현 제어가 더 오래 교란된다는 걸 뜻한다.
아울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제거된 뒤에도 후각 수용체 전사가 복원되는 걸 방해하는 ‘세포핵 기억(nuclear memory)’의 한 유형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추정했다.
연구팀은 또 비강의 후각 조직 뉴런이 뇌 영역과 많이 연결돼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비강에서 일어난 면역세포 반응이 뇌의 감정이나 사고 능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공동 교신 저자인 벤저민 텐오버 뉴욕대 미생물학과 교수는 "후각이 염색체 사이의 '깨지기 쉬운(fragile)' 게놈 상호작용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면역체계가 염색체 간 접촉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반응할 때마다 후각 유전자 발현이 멈춘다면 후각 상실은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텐오버 교수는 "코로나19 환자의 후각 상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른 증상들이 나타나기 전에 뇌 조직을 손상시키고 있다는 조기 신호일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