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혐오에 물들지 않는 한 해 되길

입력
2022.02.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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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엔 ‘계수 조정의 정치’란 말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보수 vs 진보’가 엄청 대립하는 것 같지만 안 그렇단 얘기다. 복잡하게 말하자면, ‘성장 vs 분배’ 문제만 해도 예산으로 따져봤더니 가령 기민당 집권 때 ‘51대 49’였다면, 사민당 집권 때는 ‘49대 51’ 정도이더란 얘기다.

대통령제인 데다 워낙 '도덕 지향적’ 국가라 대립이 더 극적으로 연출되는 경향이 있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빨갱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나라를 북한에 통째 들어다 바치지 못했다. ‘극우본색’을 드러냈던 이명박 박근혜 정권도 나라를 파탄내진 못했다. 아니, 막판에 탄핵당해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 하루라도 더 나라를 망치는 데 실패하기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야 더 말해 뭣하랴. 김정은, 시진핑에게 나라를 팔지도 못했고, 최소한 남미 꼴로도 못 만들었다.

양쪽이 힘 합쳐 한결같이 성공한 분야도 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정치 사회 각 분야의 갈등 증대 같은 것들이다. 이 국론통합을 기뻐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치챘겠지만 ‘계수 조정의 정치’란 말엔 기존 정치에 대한 분노가 함축되어 있다. 최근 화제가 됐던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이 풍자하는 현실, ‘모두가 정치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대지만, 정치를 진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깨달음이 만들어낸 분노다.

그렇게나 대단하다는 ‘지엄한 민심’ ‘국민 심판’ ‘정권 교체’라는 게, 때 되면 여당 야당 자리 바꿔 앉는 ‘내로남불 손가락질 교대의식’을 장엄하게 꾸며주는 팡파레 정도이더란 얘기다. 후보 본인, 그 옆에서 뭔가 주워 먹을 게 있는 사람들이야 ‘이번 선거 한 판에 시대가 바뀔 것’이라 호들갑 떨지만, 보통 사람들 눈엔 자기네들끼리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소놀이로 비칠 뿐이다.

얼마 전 장강명 작가는 거대담론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대선을 두고 '우리가 그냥 다 같이 시시해졌다’라고 정리했다. 참으로 옳은 정리이긴 한데, 계수 조정의 정치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게 낙담할 일은 아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공약이 비슷해지고, 그 빈자리를 ‘소확행’과 ‘심쿵’이 메우며, 콘텐츠가 고만고만하니 스타일만 쓸데없이 과격해지는 대선이란,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목메는 선진국이란 징표(!)일지 모른다. 일상은 시시하기 마련이고, 계수 조정의 정치란 말 자체에 선진국 특유의 나른함이 묻어 있으니까.

이런 얘길 하는 건 ‘사상 최악’ 대선 때문에 어느 쪽 할 것 없이 정의의 분노가 너무 커서다. 지나치게 걱정 말자.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까지, 깔끔하게 다 이겨낸(!) 국민이다. 누가 되든 임기 초반만 지나면 ‘문재인 or 박근혜도 이러진 않았다’류의 칼럼이 다양하게 쏟아질 예정이다.

그러니 올 한 해 우리 각자의 정의가 조금은 덜 신경질적이고, 조금은 더 반성적이며, 그리하여 조금은 더 포용적이 되길. 이탈리아의 어느 작가가 '파시스트 되는 법'(사월의책)에서 그랬던가. 열혈 파시스트가 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출발점에선 민주주의자였으며, 그중에서도 대개는 “화난” 민주주의자였을 뿐이라고.

저마다의 정의에 약간의 유머를 첨가하시길. 그리하여 저마다에겐 나름 소중할 정의가 알게 모르게 혐오에 젖어드는 일은 피하시길. 이까짓 대선이 뭐라고 말이다.

조태성 정책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