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운이 좋은 사람에게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라는 농담을 자주 한다. 삶이 힘들거나 고달픈 사람들은 "전생에 많은 죄를 지었다"라고 한탄을 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현재의 삶이 전생이라는 업보와 연관되어 있다는 설정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기에 딱 맞는 재료이기도 하다. 전생 따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도깨비'나 '호텔 델루나'의 재미에 푹 빠지게 되는 것은 우리 뇌가 늘 합리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면 전생을 기억해 내기 위한 방법으로 최면을 걸기도 한다. 원래 최면요법(hypnotherapy)은 정신과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며, 일종의 암시에 의해 주의를 한곳에 집중시켜 억압된 기억들을 되살리게 하는 기법이다. 반면 전생요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 삶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어떤 문제의 원인이 전생에 있다고 믿는 것이며 환생이나 윤회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여 현실의 문제를 치료한다는 발상은 정신분석학을 창시한 프로이트의 이론인 '현재의 행동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정신분석의 핵심은 억압된 무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증상을 치료하는 실마리를 찾는 것이지 떠올린 과거의 기억이 전생이라는 것은 아니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꿈을 꾸게 되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고 하면서 무의식이 지닌 예지력을 주장하였다. 반면 예지몽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이었던 앨런 홉슨은 꿈의 예언적 기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만약 꿈의 해석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모두 예측할 수만 있다면 해몽(oneiromancy) 전문가가 인류의 미래를 지배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꿈에서 전개되는 시각적인 장면은 모두 우리의 뇌에 저장되어 있던 과거의 기억에 불과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초월해 과거나 미래에 가보는 것은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인생의 실수를 교정하거나, 다음 주 로또의 1등 번호를 미리 알아서 부자가 되는 상상을 모두들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를 원하는 대로 다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현재라는 소중한 가치의 왜곡을 감수해야 하며, 미래를 알게 됨으로써 다가올 불행을 미리 인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인지는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국어사전에 '무속(巫俗)'이란 '무당과 관련된 풍속'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김태곤의 '한국무속연구'에 의하면 '무속은 민간층의 종교의식이 집약된 것으로 한민족의 정신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생활을 통하여 생리화한 일종의 종교현상'이라고 했다. 인간이 자연현상에 대하여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 이전에는 소위 '무당'이라는 대리자의 예언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아쉽게도 과거의 데이터가 엄청나게 축적된 인공지능조차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는 것은 여전히 요원하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는 합리적 사고를 하기보다 앞날을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해답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다만 그런 예언이 맞을지 틀릴지에 대한 믿음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과학자를 능가하는 예언가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궁금해서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두 개 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이며 지긋지긋한 코로나는 언제쯤 종식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