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어법, 겸양의 격률

입력
2022.02.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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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Leech)의 정중어법 중 네 번째 격률인 '겸양의 격률'은 말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칭찬은 최소화하고,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최대화하며 정중함을 지키는 원리이다. 찬동의 격률(본지 1월 28일 자 '우리말 톺아보기' 참고)이 청자에게 베푸는 공손함과 칭찬을 최고로 하는 기준이라면, 겸양의 격률은 반대로 화자의 입장에 적용된다.

영어에서는 "You look so good(너 꽤 좋아 보인다)"이라고 하면, 상대방은 "Thank you(고마워)" 하며 그 칭찬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대화를 진행한다. 그러나 우리말에서는 "오늘 정말 멋져 보이세요"라고 듣게 되면 "아닙니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와 같이 화자의 말을 부정함으로써 겸양의 격률을 준수한다. 우리말이나 일본어에서는 상대방의 칭찬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천만에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등과 같이 자신을 낮추어 말하는 것이 대표적인 겸양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겸양의 격률은 정중어법 중 문화적인 차이를 가장 크게 드러낸다. 우리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동방예의지국의 문화에서는 더욱 중요한 말하기 태도이다. 그러나 "아니라고요!"와 같이 상대방이 고맙게 전하는 칭찬을 지나치게 부정하거나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고집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대화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정도를 지켜야겠다. 정중어법은 총 다섯 가지의 격률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소개하지 못한 채, '겸양의 격률'로 마무리하려 한다. "제 말하기 깜냥도 부족한데,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