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용기, 인간애, 정의, 절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명과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참됨과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동양의 노자와 서양의 소크라테스가 살던 고대로부터 인간의 본성으로 일컬어져 왔다. 이러한 보편적 가치들이 잘 지켜질 때 그 사회가 오래도록 유구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된 사회공동체는, 각종 제도와 조직을 마련하여 후속세대들에게 이러한 가치들을 전수하고자 애써왔다. 멀리 중국의 진나라와 로마제국은 물론이고, 우리 고려말의 상황을 보더라도 이러한 가치들이 퇴색되고 더불어 생명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이겨진 시대는 쇠락을 면치 못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가치라 할지라도, 행동실천을 통해 구현되지 않는 가치는 죽은 가치라는 것도 암흑기의 서양 중세사를 통해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식의 축적과 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이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일 때, 그 결과가 찬란한 유산으로 남는지 아니면 부끄러운 과거로 남는지 동서양의 근현대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문제는 발달한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는 당대 사람들의 시선이 눈앞의 이익과 손해에만 사로잡혀 있느냐 아니면, 미래 후세들의 삶까지 내다보느냐에 달린 것이다.
오늘날을 가리켜 혹자는 '탈진실의 시대'라 한다. 진실을 파악하려는 수고 없이 누군가가 주장하는 이야기가 뉴스가 되는 세상,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요지경 세상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 언론 신뢰도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다소 상승했다고 하지만, 2021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사대상 46개국 중 39위로 꼴찌그룹에 속한다. 심지어 일부의 사람들은 '뉴스=사실'이라는 과거의 프레임에 익숙해 언론이 사실과 무관한 내용을 보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또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태초부터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있었기에, 뇌의 인식능력이 제대로 발달하기 전부터 총천연색의 시각 자극과 소음 속에서 부유하며 성장한 오늘날의 아동·청소년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극에 달한 현재와 같은 시대를 어떻게 겪어내고 있을까.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던져진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멍청이가 되기보다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이들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의 지성과 감성, 직관, 감각에 이르는 모든 인식의 통로를 활용해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 세대들이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절대적 진리의 세계가 가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상대적 진리의 세계가 도래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상대성이 지나쳐 어디에도 진리가 없는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보더라도 진리이고 사실일 수 있는 보편성을 무시하는 개별성과 자유는 위험하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해칠 수 있으니 말이다. 개별 집단의 이해에 근거하여 서로의 차이만 주장하기보다 우리가 가진 공통점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을까. 우리 모두 이 혼탁한 시대를 살아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