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수영장 물을 빼려고 하나

입력
2022.02.03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설 연휴 마지막 날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일상의 한 부분이 돼가고 있음을 체감한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경고에도 노르웨이가 코로나19 관련 방역 조치를 철폐하기로 했다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머지않은 듯도 하다. 코로나를 완전히 종식시키는 ‘엔드(End) 게임’이 아니라 코로나가 끝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한 ‘엔드리스(Endless) 게임’의 시작 말이다.

2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이 남긴 상처는 크다. 극단적 선택이 잇따르고 있는 자영업자 문제부터 심각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말 624조9,000억 원이던 자영업자 금융권 부채는 지난해 3분기 887조6,000억 원으로 29.6%(162조7,000억 원) 급증했다. 빚을 내서 근근이 버텨왔다는 뜻이다. 학교 폐쇄 장기화로 계층 간 교육격차가 더 벌어진 문제는 두고두고 우리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보건 위기는 산업 간 계층 간 불균형 문제로 이미 전이됐다는 건 여러 통계로 확인된다. 비단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격차 해소를 위한 기본소득 도입과 증세 논의가 활발한 이유다. 전 세계 ‘슈퍼 리치’ 102명은 지난 17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공개서한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우리 같은 부자들에게 당장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 차원이 아니라 그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계산에서다. 실제 복지 정책에 관해 인색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구제법’을 통해 실업자에게 매주 600달러의 실업 보조수당을 지급했던 효과를 톡톡히 확인하고 있다. “그렇게 돈을 주면 누가 일하겠어”라는 ‘퍼주기 논란’이 무색하게, 미국의 지난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7%로 1984년(7.2%)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이 발 빠르게 태세전환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나. 대선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국민 통합이나 미래를 위한 비전은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주장하는 합리적 근거조차 내놓지 않고 던진 ‘여성가족부 폐지’나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외국인 건강보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 등 혐오와 배제의 언어만이 노골화하고 있다.

2014년 차상위 계층에 정부가 의료보험을 제공하는 ‘오바마 케어’를 도입했을 당시 미국의 일부 주들은 연방보조금을 거부하면서까지 저항했다. 흑인이나 이민자 등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을 나눠주는 건 낭비라는 게 명분이었지만, 인종주의 성향이 강한 보수적 백인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택이었다.

미국의 공공정책 전문가 해더 맥기는 이를 ‘수영장 물 빼기 정치’라고 정의 내렸다. 1950년대 미국 전역에는 2,000개가 넘는 공공 수영장이 있었는데, 인종차별 폐지로 흑인들이 공공 수영장을 함께 쓸 수 있게 되자 그 꼴은 볼 수 없다며 수영장 물을 모두 빼버린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그 결과 개인 수영장을 만들 만큼 부유한 일부 백인을 제외하곤 백인들도 수영할 곳을 잃고 말았다. 수영장 물 빼기 정치에서 승자는 없다.



이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