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충돌 직전 상황으로 치닫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외교와 전쟁의 고비에 섰다. 미국과 러시아가 협상안 서면 교환에 이어 외교장관 전화 통화 등으로 대화를 이어가면서 전쟁 위기는 한풀 꺾였다. 4일(현지시간) 시작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중국·프랑스와의 정상회담 같은 외교 일정 때문에 러시아가 당분간 직접적인 군사 행동은 자제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2일 미군 3,000명 동유럽 배치 명령을 내리는 등 대치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일 전화 통화를 하고 양측의 협상안을 논의했다. 러시아가 요구해온 안전 보장 관련 서면 답변을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가 지난달 26일 제시한 뒤 일주일 만의 협의였다.
하지만 당장 타협안이 도출된 것은 아니다. 통화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신속하고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블링컨), "(미국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부차적인 문제에만 집중했다"(라브로프) 같은 신경전만 계속했다.
게다가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여우가 닭장 꼭대기에서 닭이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라며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병력을 증강하는 러시아를 여우에 빗대 비판하기도 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군의 동유럽 추가 배치를 공식 승인했다고 2일 미 국방부가 발표했다. 이에 따라 폴란드에 2,000명, 루마니아 등에 1,000명의 병력이 배치될 예정이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에 대비해 미군 8,500명의 출동 대기 명령을 내린 바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시화한 이후 현 상황에 대해 첫 언급을 했다. 그는 1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외교 협상 필요성을 내비치면서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시 크림반도 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며 경고했다.
외곽에서도 치열한 견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푸틴 대통령과 밀월관계인 러시아 관리와 기업인을 표적으로 하는 제재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은 지난달 31일 우크라이나 사태 후 첫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를 소집해 러시아가 벨라루스 국경에 3만 명이 넘는 병력을 집결시키려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침공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도 전통적인 반(反)러시아 성향 국가인 폴란드에다 영국까지 끌어들여 3자 협력 틀을 구축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안보 불가분성' 원칙 훼손이라는 서한을 지난달 28일 미국, 유럽 국가 등에 전달한 사실을 이날 공개했다. 안보 불가분성 원칙은 다른 나라의 안보를 희생해 자국의 안보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다만 단기간 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줄어드는 분위기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은 (첫 회견에서) 나토의 동유럽 주둔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외교를 강화할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했다”라고 분석했다. 러시아가 수천 마일 떨어진 곳의 부대를 이동시켜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 군사력을 증강하는 방식은 갈수록 비용이 많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또 중국의 잔치인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둔 상황에서 재를 뿌리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할 경우 부담도 크다. 여기에 미국이 우크라이나 긴장 완화 일환으로 나토의 동유럽 핵심 기지인 폴란드와 루마니아 미사일 방어 시스템과 러시아 지상 발사 무기 상호 검증을 제안했다는 미 블룸버그통신 보도도 나오는 등 협상 카드도 하나씩 등장하고 있다.
물론 겨울철 땅이 얼어 탱크 등 기갑부대 이동이 용이한 2월 중하순 러시아가 실제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여전하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달 26일 “푸틴 대통령이 지금부터 2월 중순 사이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징후를 분명히 봤다”고 주의를 환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