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미스 USA’ 선발대회에서 흑인이라는 인종적 편견을 딛고 우승해 화제를 모았던 여성이 극단적 선택으로 삶을 마감해 미국이 비통한 분위기에 잠겼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스 USA 우승자 출신 체슬리 크리스트(30)가 이날 오전 뉴욕 맨해튼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경찰은 이 아파트 9층에 살고 있던 크리스트가 스스로 몸을 던져 삶을 등진 것으로 보고 있다.
투신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어머니에게 재산을 맡긴다는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투신 직전에는 인스타그램에는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오늘이 당신에게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 주길”이라는 글을 남겼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절망적이고 슬프지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크리스트의 부고를 전한다”며 “그가 보여준 빛과 아름다움, 강인함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이 됐다”고 밝혔다.
크리스트는 미국 3대 미인대회 중 하나인 미스 USA에서 2019년 왕관을 썼다. 흑인이 우승한 건 1990년 이후 30년 만이었다. 당시 크리스트는 노스캐롤라이나주(州)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재소자를 위한 무료 법률 지원을 하는 등 활발히 사회운동을 해 온 사실이 알려져 큰 관심을 모았다. 대회 과정에서도 성폭력 고발운동인 ‘미투(#MeToo)’와 ‘타임스업(#TimesUp)’을 지지한다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대회 우승 이후 크리스트는 미국 연예매체 엑스트라TV에서 진행자로 활동하고, 여성들에게 편안하고 저렴한 작업복을 소개하는 패션 블로그도 운영하며 대중적 영향력을 더 넓혔다.
미국 미인대회 역사를 다룬 책 ‘그녀가 있었다’에 필자로 참여한 에이미 아르겟싱어 WP 편집자는 크리스트의 우승을 두고 “곱슬머리를 납작하게 다리거나 화학적으로 곧게 펴도록 고통스러운 순응을 강요하는 미의 기준을 뒤집기 위한 미국 흑인 여성들의 노력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크리스틴 엠버 WP 칼럼니스트도 “크리스트의 영예는 고정관념을 바로잡고 오해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썼다.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각계에선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엑스트라TV 제작진은 “마음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며 “고인은 우리 프로그램의 사랑스러운 일원이었고 언제나 스태프를 감동시켰다”고 애도했다. 미스 USA 참가자들도 성명을 통해 “크리스트는 활기차고 강하며 아름다운 빛이었다”며 “당신은 우리에게 무수한 영감을 주었고 당신의 영향력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