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준비했던 현대엔지니어링이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하면서 상장을 연기했다. 시장의 저조한 관심에도 "철회 계획은 없다"고 밝힌 지 이틀 만이다. 현대엔지니어링 상장을 지렛대 삼아 그룹 지배구조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앞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28일 현대엔지니어링은 기업공개(IPO)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연기했다고 공시했다. 현대자동차그룹 건설 계열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은 내달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국내 주식시장 급락에 광주 서구 아파트 붕괴 사고 여파로 건설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현 상황을 우선 피해 가려는 판단이다. 이달 25일부터 이틀간 진행한 국내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쟁률은 수백대 1에 그쳐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주식시장이 감당 불가능한 정도로 휘청이고 설상가상 광주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해 '건설업은 못 믿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탓에 공모를 철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상장이 연기되면서 구주매출로 지배구조의 밑바닥을 다지려 했던 정 회장의 큰 그림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 등의 순환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가 핵심 고리인데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2%로 최대주주인 기아차(17.28%)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현대엔지니어링 IPO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현대모비스 지분율을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현대엔지니어링 IPO에서 정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구주매출로 내놓은 주식은 각각 534만 주와 142만 주로, 상장에 성공하면 4,000억~5,000억 원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달 초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현대글로비스 지분 10%를 매각해 현금화한 6,100억 원을 합치면 1조 원의 '실탄'이 확보될 수 있었던 셈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당분간 공모 재개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연내 상장도 미지수가 됐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공모 일정은 아직 미정"이라면서 "투자 수요가 회복돼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을 수 있을 때 공모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