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넘어 국가 외교자산이 된 TSMC

입력
2022.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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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를 둘러싼 미중 갈등 속에서 각별히 주목받은 곳은 대만과, 대만의 반도체업체인 TSMC다. TSMC의 최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은 종주국인 미국도 보유하지 못한 것이고, 중국 역시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영역이다. 첨단 반도체 공정 부문에서 대만이 구축해 온 이 '대체 불가능한 역량'은 미중 기술 패권 갈등 와중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급상승시켰다. 대체 TSMC는 어떻게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1980년대까지 반도체 산업은 설계 공정 조립을 하나의 기업 내부에서 모두 수행하는 '종합반도체 기업' 모델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30년간 미국 반도체 업체에서 종사했던 모리스 창은 장차 반도체 설계와 생산이 분리될 것으로 예견했다. 귀국한 그에게 대만 정부는 종합반도체 기업 육성을 요구했지만, 그는 대만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제조 쪽에 특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 1987년 파운드리 특화기업인 TSMC를 설립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예상대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높은 인건비와 장비 투자를 요구하는 제조를 아웃소싱하는 설계 전문기업들이 증가했고, TSMC는 이들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 칩을 제조했다.

설계 전문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의 기밀이 담긴 반도체 설계도를 다른 회사에 넘겨 생산을 맡기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때문에 파운드리 모델의 성공에 대해선 모두가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모토를 내세우며 철저한 비밀보장과 성실한 주문 관리로 신뢰를 쌓아 왔고, 2011년 마침내 애플 휴대폰칩 제조를 계기로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TSMC는 미국이 짜고 있는 반도체 동맹의 굳건한 축이다. 매출액의 60% 이상을 미국에서 얻는 TSMC가 애리조나 최첨단 반도체 공정 투자를 통해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다. 다른 한편, TSMC는 중국 IT기업과의 관계도 미국의 제재 범위 밖에서 조심스럽게 이어가고 있으며, 중국도 TSMC의 미국 선택을 대놓고 비난하지 못한다. 일례로 단교 이후 대만을 방문한 최고위급 인사인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과 차이잉원 총통, 모리스 창이 2020년 9월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을 때에도, 중국 언론은 모리스 창이나 TSMC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다. TSMC 역시 차관 방문 직전까지 화웨이에 보낼 마지막 반도체 칩을 최대치로 생산, 중국에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TSMC 중국 난징 투자가 상대적으로 저성능 반도체 공정에 머무르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 내 여론이 좋지 않을 때조차 중국 관영언론은 TSMC의 투자가 중국 반도체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논쟁을 가라앉혔다.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TSMC와 중국 IT업체와의 관계를 한 대만 언론은 '늑대와의 춤'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현재 TSMC는 미국뿐 아니라 일본 독일에 반도체 공정시설을 건설하며 대만판 반도체 동맹을 짜고 있다.

TSMC는 외교적으로 매우 취약한 대만의 가장 중요한 외교자산이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TSMC 때문일 것이다. TSMC와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식, 비공식 관계를 지속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TSMC를 포기하기 어렵다. TSMC의 앞날이 장밋빛만은 아니지만 TSMC는 현재까지 미중 반도체 갈등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며 자사는 물론 자국의 대외적 위상을 높이고 있다. 우리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사례이다.


배영자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