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으로 사람이 몰리면서 지역은 모든 부분에서 쇠락하고 있다. 일자리, 교육, 청년인구 비율 등 열거하자면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지역의 문제라고 묻지 마라. 지역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60년대에 이미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그때는 그나마 나았다. 지금은 '서울공화국'이 아니라 숫제 '수도권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했다지만, 지역은 아직도 개발도상 상태다. 지난 시대처럼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도약이 필요하다.
한국경제를 일으킨 리더십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시대의 리더십을 논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주영·이병철 회장 등의 기업인이 반드시 언급된다. 90년대 초반 모 일간지에서 대한민국에 가장 공헌한 인물을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전·현직 대통령 중에서는 정치력과 행정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장 뛰어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제에 가장 공헌한 인물은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박 전 대통령은 3위였다. 2위는 이병철 회장, 그리고 1위는 정주영 회장이 차지했다. 여론조사가 이루어진 때가 30여년 전이니 이들의 활동상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다수였을 것이다.
경제적 리더십 1위에 빛나는 정주영 회장이 남긴 일화들 속에 지역이 살아날 해법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평소에 자주 했다는 "해보기나 했어?" 하는 말처럼 그는 늘 도전의 화신처럼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했다. 중동 지역에 공사 건이 들어왔을 때 다른 이들은 날씨를 이유로 들어 포기했지만 정 회장은 "중동은 건설공사 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이다. 낮은 더워도 밤은 시원하니 낮에는 천막을 치고 자다가 밤에 공사하면 되고, 물은 어디서든 실어 오면 그만"이라면서 사막 공사에 뛰어들어 30만이 넘는 한국 노동자를 중동지역으로 보내 달러를 벌어오게 했다. 안 되는 이유에 좌절하기보다 늘 가능성에 파고들었다. 극한 상황을 되레 장점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도전적인 마인드가 정주영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다.
1981년 9월7일, 정 회장은 세종문화회관에서 특강을 진행했다. 이 특강에서는 조선소와 관련된 일화들이 대거 쏟아졌다. 조선소도, 배를 만든 경험도 없는 나라에서 해외 차관을 얻어오기란 말 그대로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그는 일본과 미국을 거쳐 영국에서 기어코 일을 내고야 말았다. 차관을 얻은 후 조선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배를 만들었다. 당시까지 그렇게 빨리 조선소를 건설해낸 나라가 없었다. 조선업에서 성공을 이룬 이후가 더 중요하다. 정 회장은 "현재 조선소 덕분에 현대 건설의 공신력이 올라갔다"고 언급했다.
지역 문제의 해법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만 제대로 해내도 가능성이 열린다. 지역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제반의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방법은 없다. 다만,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성과를 하나라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나머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리더의 도전과 용기가 주춧돌을 놓으면 나머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을까.
한국의 대중문화가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BTS, '기생충', '오징어게임' 등이 한국의 대중문화가 대한민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한껏 높여놓았다. 그저 한국 노래와 드라마가 팔리는 정도를 넘어서 한국이 만든 상품, 한국의 문화 전체에 호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나를 빼어나게 잘해서 성공시키면 나머지 분야도 낙수효과를 본다.
정 회장이 특강 중 들려준 일화가 재밌다. 한 남자가 성형외과를 찾아와 "코가 낮아서 선거에서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코를 높여서 결국 선거에서 이겼다. 이 일에 대한 정 회장의 해석이 흥미롭다. 그는 '코가 낮기 때문에 안 될 것'이란 생각이 그를 위축시켜 선거 승리에 큰 장애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마음의 문제라는 이야기였다.
20년 전 처음 군위축협 조합장에 올랐을 때 "망할 조합"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육우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두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안 된다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될 것이었기에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다. 육우의 성공 이후 군위축협에서 하는 사업이면 모두 호감을 가지고 지켜봐줬다. '한 가지'에 대한 용기와 성과가 나머지 모두에 선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결국 하나를 제대로 해내는 용기와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하다. '안 되는 10가지' 앞에서 손을 놓고 있으면 절망 외에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하나만 제대로 해내면 나머지 아홉 모두 절망에서 빠져나올 동력을 얻는다. 그런 면에서 '지역'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본동력은 용기다. 탈무드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난 후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용기라고 했다. 지역 자체가 문제가 된 상황에서 용기는 지역이 붙잡을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자 반격 전초기지다. 지역이 지금의 혼란과 난맥상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정주영 스타일의 적극적인 용기와 리더십이 더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