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속 두번째 설...'집콕'은 이제 국룰이 됐다

입력
2022.01.31 19:00
숫자로 본 달라진 명절 풍경 
열차·고속도로 통행 절반 줄고 
명절 제주·호텔 휴가는 예상보다 소폭 증가세
간편식·편의점 도시락 매출 증가...결론은 '집콕'

'명품은 역시, 자기만족이었네.' 요즘 해외 명품 브랜드 가격 인상 전 백화점 오픈런(매장 열기 전부터 대기하다 뛰는 것)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고소득 직종일수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에 재택근무 비율이 높은데, 과시욕으로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산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추론이잖아요. 유례없는 집값 상승과 주식 호황, 일상을 포기해야 할 만큼 까다로워진 해외 방문, 그로 인한 보복소비. 모두 코로나19 이전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현실입니다.

코로나19 3년 차인 지금, 일상은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달라졌습니다. 명절 모습도 마찬가지죠.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고, 가족들 잔소리 피해 영화관으로 숨는 이들도 없어졌고요. 코로나19로 달라진 명절, 각종 숫자로 정리해봤습니다.


열차‧고속도로 이동 절반으로 감소

달라진 명절을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곳은 고향 가는 길, 기차역과 고속도로죠. 코로나19 전후 열차 예매율을 볼까요. 코레일에 따르면 2018년 추석승차권 예매기간 판매된 티켓은 모두 91만 석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환자가 국내 처음 발생한 2020년 설 연휴에도 93만 석이 팔려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여파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겪던 그해 추석부터 시작됐죠. 설보다 연휴가 하루 늘었지만 처음으로 창가 좌석만 예매를 진행해 47만 석만 팔렸고, 지난해 설은 이보다 더 줄어든 33만 석이 팔렸습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지난해 추석을 기점으로 명절 열차 예매는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2021년 추석 48만4,000석 예매에 이어 이번 설에는 51만1,000석이 팔렸네요.

도로 사정도 마찬가집니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3년 동안 설 연휴 기간 고속도로 이동 인원은 2019년 4,269만 명(연휴 7일)에서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 3,251만 명(연휴 5일), 2년 차인 2021년 2,043만 명(연휴 5일)까지 급격히 줄어듭니다. 역시 코로나19 장기화로 올해는 지난해보다 늘어난 2,877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되네요.


인천공항 이용객은 40분의 1 토막 나

더 드라마틱한 변화를 볼 수 있는 곳은 공항이죠. 코로나19 발생 전 3년 동안 인천국제공항은 설 명절 기간 하루 평균 20만 명이 이용하며 '개항 이래 최대 인파'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를 볼까요. 2018년 설에는 하루 평균 19만여 명, 2019년 설에는 20만2,000여 명,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설에는 20만7,000여 명이 이용했네요.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 해외 출입국자가 대폭 줄면서 인천국제공항은 이후 명절 이용객 관련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습니다.

수치를 뽑아보니 이용객이 40분의 1토막으로 줄었더군요. 2020년 추석 연휴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5,877명, 2021년 설 연휴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5,067명에 불과했습니다. 입국 후 자가격리 기간을 감안하면 열흘가량 일상 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만큼, 당분간 해외 방문은 웬만하면 늘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지난해 추석 연휴 하루 평균 이용객은 8,742명이었고, 이번 설 연휴도 이와 비슷한 9,858명이 될 거라고 인천공항은 전망하고 있습니다.


명절에 제주도·호캉스 열풍? 코로나19 전과 비슷

긴 명절 기간 코로나19로 해외 못간 사람들이 제주도로 몰린다는 기사, 한번쯤 접해보셨을 겁니다. 진짜 그런지 확인했더니 꼭 그렇지는 않더군요.

제주도관광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직전 관광객 수는 △2018년 추석 22만여 명(연휴 5일) △2019년 설 23만여 명(연휴 5일) △2019년 추석 18만여 명(연휴 4일) △2020년 설 21만여 명(5일)로 연휴 기간에 따라 18만~23만 명 수준을 오르내렸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2020년 추석 19만여 명(연휴 6일) △2021년 설 15만여 명(연휴 5일)로 되레 감소하다 △2021년 추석 25만 명(연휴 6일)으로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지난해 추석에 딱 한번, 코로나19 전보다 제주도에 사람이 더 몰린 셈이죠. 관광협회는 이번 설에 평년 수준인 20만여 명(연휴 5일)이 제주를 방문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코로나19 이후 명절 기간에 사람들이 호텔을 휴가지 삼아 쉰다는 기사, 또 한번쯤 읽어 보셨을 겁니다. 진짜 그런지 서울 5성급 호텔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문의했더니, 또 '꼭 그렇진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신세계조선호텔 관계자는 "코로나19 후로 명절 국내 이용객이 늘었지만,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①5성급 호텔 이용객의 상당수는 해외 인사인데, 코로나19 이후 크게 줄었고 ②호텔 이용객을 국적으로 나누는 게 불가능할뿐더러 ③국내 이용객이 아무리 늘어도 코로나19 이전 예약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 명절 기간은 평상시보다 예약률이 소폭 오른다고 하더군요. 인터컨티넨탈 서울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명절이 1년 중 가장 예약률이 낮은 기간인 반면 코로나19 이후에는 가장 바쁜 시기로 바뀌었다"며 "올해 설 연휴 기간 객실 점유율은 월평균보다 약 20% 높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영화 관객 10분의 1로 줄고 OTT 이용률 30% 증가

인천공항만큼은 아니지만 영화관 이용객도 대폭 감소했죠.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통해 코로나19 전후 설 명절 기간 영화 관객수를 살펴봤습니다.

코로나19 이전 명절 연휴 박스 오피스 1~5위 누적관객수는 △2018년 설(2월 14~18일) 628만여 명 △2018년 추석(9월 21~26일) 684만여 명 △2019년 설(2월 1~6일) 852만여 명 △2019년 추석(9월 11~15일) 548만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설(1월 23~27일)에는 405만여 명으로 전년 설 대비 절반가량으로 줄더니 코로나19 확산 여파가 몰아친 2020년 추석(9월 29~10월 4일)에는 172만여 명, 2021년 설(2월 10~14일)에는 67만여 명으로 코로나19 이전의 10분의 1로 줄었더군요. 2021년 추석(9월 17~22일)에는 150만여 명으로 소폭 상승했지만, 넷플릭스 등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 서비스) 인기로 맥을 추지 못했습니다.

OTT의 경우 명절 기간만 짚어 이용률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코로나19 이후 국내 가입자가 급증한 건 분명해보입니다. 지난해 10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낸 '한국, 일본, 중국의 OTT 시장 매출액 및 가입자 현황'에 따르면 국내 OTT서비스 가입자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2월 756만여 명에서 2020년 12월 1,111만여 명으로 31%가량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넷플릭스 가입자가 222만 명에서 383만 명으로 가장 크게 늘었고 △웨이브(161만 명→210만 명) △티빙(80만 명→178만 명) △시즌(117만 명→130만 명) △왓챠(79만 명→108만 명)도 상당히 늘었더군요.


간편식 사용 늘고 이혼율 감소...우연일까

명절 연휴에 고향도 관광지도 호텔도 심지어 영화관도 안 가는 사람들은 '집에서 각자 OTT를 봤다'는 말일까요. 그래서인지 코로나19 이후 명절용 간편식 판매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이마트가 가정간편식(HMR) 자사 PB브랜드 피코크 제수음식의 명절 전 15일간 매출을 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전인 2019년 설에 비해 지난해 설과 추석 매출이 각각 34.1%, 11.1% 늘었다고 합니다. 온라인몰인 SSG닷컴에서도 피코크 제수음식 매출이 2019년 대비 지난해 설(106%)과 추석(86%)에 급격히 증가했고요. 신세계푸드의 HMR 브랜드 올반의 제수음식 역시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 대비 21% 늘었다네요. 특히 설과 추석을 앞둔 3주간 판매량은 각각 39%, 47%나 뛰었습니다. 현대백화점 역시 올해 유명 맛집의 대표 메뉴를 가정간편식으로 만든 설 선물세트 매출이 지난해보다 120.3% 늘었다고 하네요.

코로나19 이후 명절 연휴, 편의점 도시락 판매도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CU가 최근 3년간 설 연휴 사흘 동안 상품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직전 주 대비 도시락 매출 신장률이 2019년에는 22.3%에 그친 반면 2020년에는 26.7%, 2021년에는 30.8%로 늘었습니다. 특히 1인 가구가 밀집한 원룸촌, 오피스텔 인근 편의점은 다른 곳보다 명절기간 점포당 일평균 도시락 판매량이 30% 이상 높았다고 하네요.

각종 데이터를 정리하면 코로나19 이후, 명절에 '집콕'하며 간편식 먹고 OTT 보는 사람이 급증했다는 거네요. 그래서인지, 설·추석이면 으레 나오던 '명절증후군'이란 말은 줄고 있습니다. 명절증후군의 극단적 사례로 자주 언급됐던 '명절 후 이혼 건수'도 줄었어요.

통계청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명절이 지나면 이혼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2018년 이혼 건수가 2월 7,724건에서 3월 9,117건으로 늘고, 9월 7,826건에서 10월 1만548건으로 늘었던 것처럼요. 2019년 이혼 건수도 2월 8,204건에서 3월 9,071건으로, 9월 9,010건에서 10월 9,859건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3월‧10월 이혼 건수는 전달보다 줄어드는 패턴을 보입니다. 2020년 2월 8,232건에서 3월 7,296건으로, 9월 9,536건에서 10월 9,347건으로 명절 직후 이혼 건수는 과거 사례와 비교해 감소했습니다.

"이번 설 연휴 5일 동안 오미크론 유행의 크기를 결정짓는 변수가 될 것 같다. 고향 방문 등 이동과 만남을 가급적 자제해 달라." (김부겸 국무총리, 1월 27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코로나19 3년 차, 이제 명절에는 덕담보다 정부의 우려 섞인 당부를 듣게 되네요. 국룰이 된 '명절=집콕', 다음 명절에는 깨지길 기대해봅니다.

이윤주 기자
김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