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변호사’라고 하면 전관 변호사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대기업 등에 영입되는 검찰 간부나 부장판사 출신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기관 내부를 들여다보면, 고문 변호사는 반드시 전관이 독식하는 자리가 아니다.
연봉 수억 원을 받는 전관부터 법무법인 소속 신참 변호사까지 고문 변호사의 역할은 다양하다. 변호사 자격만 있다면 누구라도 고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전관이 아닌 고문 변호사들은 '을(乙)'의 위치에서 불법적인 일을 요구받기도 한다. 변호사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이 같은 일은 더욱 잦아지고 있다.
30대 중반 변호사 A씨는 2020년 소속 법무법인에서 중소기업 회장의 학력 위조가 적발되지 않도록 자문해주라는 지시를 받았다. A씨는 "법조 인맥이 부족한 소규모 법무법인에선 고문 계약한 클라이언트가 절대 갑(甲)"이라며 "고민 끝에 다른 변호사에게 일을 넘겼는데 결국엔 허위 공증서를 만들어줬다"고 전했다.
변호사 B씨도 '불법'이나 다름없는 절세 업무를 맡은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소속 법무법인이 계약한 업체 대표의 자산 증여에 대한 법률 서비스를 전담했다. 업체에선 절세 방법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는데, 사실상 세금 한 푼 안 들이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B씨는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모펀드를 통해 홍콩법인에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된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홍콩 로펌까지 알선해줬다. 그는 "통상 법인과 자문계약을 하면 법인 대표나 소유주는 자문대상이 될 수 없지만, 고문 계약을 맺으면 관행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방자치단체나 행정기관 고문 변호사들도 ‘을(乙)’의 위치에서 공무원들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때가 적지 않다고 토로한다. 공식적인 법률 자문를 넘어, 단체장이나 고위직 공무원들의 법률 비서로 일해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변호사 C씨는 매달 최대 20만 원의 고문료를 받으면서 공무원의 개인 법률사무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중고거래 플랫폼에 사기를 당한 공무원이 있었는데 고발장을 작성하고 접수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며 “주변에 다른 변호사는 이혼 소송 중인 직원의 재산분할 문제까지 처리해 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고문 변호사 시장이 혼탁해지다 보니,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다가 법정에 서는 변호사까지 생겨나고 있다. 변호사 D씨는 고문 계약한 회사가 분쟁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회장 범죄 자료를 경찰에 넘겨 달라"는 '회장 경쟁자'의 요청에 응했다가 되레 경찰 조사를 받았다. 2019년 변호사 E씨는 자문계약을 맺은 회사 대표 부탁으로 수사기관에 허위 고발을 하고, 기자에게 기사를 써달라고 의뢰했다가 실형을 선고 받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고문 변호사의 업무 범위와 보수와 관련해 정해진 룰이 없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증만 있으면 못할 업무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팽배하다"며 "정직한 변호사가 피해 보는 일이 없도록 업계의 자정노력이 절실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