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는 공영홈쇼핑이 하고 피해는 중소업체가 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2022.02.04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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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차 단독응찰로 수의계약 실무 협상 중
공영홈쇼핑, 직원 실수 이유로 3차 입찰 강행 
"법적 하자 떠나 처신 부적절" 목소리 나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영홈쇼핑의 업무 과실로 인해 입찰에 참여한 애꿎은 영세업체가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적법 절차를 거쳐 수의계약을 할 자격을 얻었는데 공영홈쇼핑 직원의 실수로 경쟁입찰이 또 진행되는 바람에 다 얻은 사업 기회를 잃었다는 것이다. 공영홈쇼핑은 법적 하자가 없기에 문제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7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홈쇼핑 모델 공급 에이전시 '너바나커뮤니케이션(너바나)'은 지난해 8월 공영홈쇼핑의 모델 공급 수의계약 대상자로 선정됐다. 1, 2차 입찰 모두 너바나만 참여해 유찰됐고, 공영홈쇼핑은 '단독 응찰로 두 차례 유찰되는 경우 수의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자사 규정과 국가계약법 등에 따라 너바나와 계약 체결을 위한 실무 협의를 진행했다. 표준견적서를 작성하고 구체적 사업 지침을 하달받는 등 협상은 마무리 단계였다.

실무협상 중이었지만… 공영홈쇼핑 실수로 수의계약 물거품

하지만 같은 달 20일 공영홈쇼핑은 돌연 3차 입찰이 필요하다고 너바나에 통보했다. 담당 직원의 실수로 이전 입찰 공고에 오류가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모델 2인을 기준으로 입찰가를 제출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1, 2차 입찰 공고 때 그 기준을 모델 1인으로 잘못 고지했다는 것이다. 공영홈쇼핑 담당자는 너바나에 "(실수가 없었다면) 수의계약에 해당하는 사항이었지만, 해당 오류로 인해 입찰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재훈 너바나 대표는 즉각 반발했다. 너바나가 정당하게 1, 2차 입찰에 참여해 얻어낸 수의계약 기회인데, 3차 입찰을 다시 진행하면 그 지위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른 홈쇼핑 업체들이 스튜디오에 모델 출연을 제한하면서 회사 매출의 80%가량이 공영홈쇼핑을 통해 나오는 상황이라 더 절박한 상황이었다.

'모델 2인 기준' 입찰 공고를 고집하는 공영홈쇼핑의 입장도 쟁점이었다. 공영홈쇼핑은 프로그램별로 통상 모델 2명이 출연하는 만큼 입찰가도 그에 맞춰 제출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너바나는 모델 출연 인원은 가변적이고 무엇보다 공영홈쇼핑이 모델 1인 기준으로 입찰과 계약을 진행한 전례가 있다고 맞섰다. 김 대표는 "공영홈쇼핑과 우리 회사가 2018년 모델 공급 계약을 할 당시에도 1인 기준으로 단가를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너바나는 공영홈쇼핑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변경계약 등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설득했지만, 발주처인 공영홈쇼핑이 3차 입찰을 고집하는데 어쩌겠나"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공영홈쇼핑 직원은 실수를 사과하며 대신 최대한 빨리 입찰 공고를 올리겠다고 했지만, 3차 공고가 난 건 그로부터 한 달이 넘게 흐른 뒤였다. 김 대표는 "1, 2차 입찰 간격은 단 하루였다"며 "시간을 끌어 다른 업체가 참여할 길을 열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공영홈쇼핑 "가처분도 각하… 법적 문제 없어"

결국 3차 입찰에서 너바나는 탈락했고, 지난해 12월 법원에 수의계약자 임시지위보전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지난달 26일 각하됐다. 너바나가 제시한 자료만으론 수의계약 체결이 약정됐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입찰 과정에 법적 하자가 없다는 취지였다. 재판부는 "피해 보상을 원한다면 가처분이 아닌 본안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으라"고도 했다.

공영홈쇼핑은 가처분 신청도 각하된 만큼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회사는 본보가 너바나가 제기한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자 "가처분 결정문이 곧 회사의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지난달 작성된 공영홈쇼핑의 내부 감사보고서도 법적 하자가 없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보고서는 "담당자가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고 (1, 2차) 입찰은 진행한 것은 업무적 과실"이라며 "(담당자가) 낙찰 후 자신의 과오가 밝혀지는 것이 더 문제가 될 것 같아 신규입찰을 진행했다"고 담당 직원의 실수를 인정했다. 하지만 "계약이 성립될 수 있는 기명날인이나 서명 등의 행위가 없었다"며 "선행 과오를 사후에 바로잡기 위해 신규 입찰을 진행한 것은 법률적으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즉 수의계약을 위한 실무적 협상은 있었지만 계약서에 도장은 찍지 않은 만큼 재입찰은 적법하다는 논리다.

정치권에선 합법 여부를 떠나 공공기관으로서 공영홈쇼핑의 대처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백황선 수석보좌관은 "공영홈쇼핑이 오류 수정을 이유로 강행한 3차 입찰에서 사업 예산을 2배가량 늘렸고, 너바나와의 법정 싸움을 위해 대형 로펌을 선임했다"며 "공공기관이라면 예산을 아껴가며 중소기업을 도와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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